관동별곡 / 정철
강호(江湖)에 병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관동(關東) 팔백 리에 관찰사(方面)를 맡기시네
어와 성은(聖恩)이야 갈수록 망극하다연추문(延秋門) 들이닥쳐
경회(慶會) 남문 바라보며
하직하고 물러나니 옥절(玉節)이 앞에 섰다평구역(平邱驛) 말을 갈아 흑수(黑水)로 돌아드니
섬강은 어디메요 치악산이 여기로다소양강 내린 물이 어디로 든단말꼬
서울 떠난 외로운 신하 백발도 흥성하다동주(東州)에서 밤을 새고 북관정(北寬亭)에 오르니
삼각산 제일봉이 자칫하면 보이리라궁예왕 대궐터에 오작(烏雀)이 지저귀니
천고(千古)의 흥망을 아느냐 모르느냐
급장유(汲長孺) 풍채를 다시 아니 보겠는가영중(營中)이 무사하고 시절은 3월인데
화천 가는 시내 길이 풍악으로 뻗어 있다행장을 다 떨치고 석경에 막대 짚어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초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레더니 와서 보니 눈이로다금강대 맨 위층에 선학(仙鶴)이 새끼치니
춘풍 옥저 소리에 첫잠을 깨었는가흰 옷 검은 치마 공중에 솟아 뜨니
서호(西湖) 옛 주인을 반겨서 넘노는 듯소향로 대향로 눈 아래 굽어보며
정양사 진헐대(眞歇臺)에 다시 올라 앉으니
여산(廬山) 진면목이 여기서 다 보이도다어와 조화옹(造化翁)이여 그 재간 놀랍도다
날거든 뛰지 말거나 섰거든 솟지 말거나연꽃(芙蓉)을 꽂았는 듯 백옥을 묶었는 듯
동해(東溟)를 박차는 듯 북극을 괴었는 듯높을시고 망고대(望高臺) 외롭구나 혈망봉(穴望峰)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사뢰고자
천만 년 지나도록 굽힐 줄 모르느냐
어와 너로구나 너 같은 이 또 있는가개심대(開心臺)에 다시 올라
중향성(衆香城) 바라보며만 이천봉을 역력(歷歷)히 헤려 하니
봉마다 맺혀 있고 끝마다 서린 기운
맑거든 좋지나 말거나 좋거든 맑지 말거나저 기운 흩어내어 큰 인물 만들고자
모양도 끝이 없고 생김새도 하 많구나천지 생겨날 제 자연히 되었건만
이제와 보게 되니 유정(有情)도 유정하다비로봉 꼭대기에 올라본 이 누구신고
동산, 태산이 어느 것이 높았던고노(魯)나라 좁은 줄도 우리는 모르거든
넓고도 넓은 천하 어찌하여 적단 말꼬
어와 저 경계를 어이하면 알 것인고
오르지 못하거든 내려감이 무엇이 이상하랴원통골 가는 길로 사자봉을 찾아가니
그 앞의 너럭바위 화룡소(火龍沼)가 되었구나
천 년 묵은 늙은 용이 굽이굽이 서려 있어
밤낮으로 흘러내려 창해에 이었으니
풍운을 언제 얻어 단비를 내리려나
음지비탈 시든 풀을 모조리 살려다오마하연, 묘길상, 안문재 넘어가서
외나무 썩은 다리 불정대(佛頂臺)에 올라보니
천길 높은 절벽 반공(半空)에 세워두고
은하수 큰 굽이를 마디마디 베어내어
실같이 풀어내어 베같이 걸었으니도경(圖經) 열두 구비 내 보기엔 여럿이라
이 태백 이제 있어 고쳐 의논하게 되면
여산이 여기보다 낫단 말 못 하리라산중을 매양 보랴 동해로 가자꾸나
남여(藍輿)로 완보(緩步)하여 산영루에 올라가니맑은 시내, 우는 멧새 이별을 한하는 듯
깃발을 떨치니 오색이 넘노는 듯
고각(鼓角)을 섞어 부니 해운(海雲)이 다 걷는 듯명사(鳴沙)길 익숙한 말이 취한 신선 비껴 싣고
바다를 곁에 두고 해당화 숲 들어가니
백구(白鷗)야 날지 마라 네 벗인 줄 어찌 알랴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 올라가니
백옥루 남은 기둥 다만 넷이 서 있구나
장인바치 솜씨인가 귀신이 다듬었는가
구태여 여섯 면은 무엇을 뜻하는고고성(高城)을 저만 두고 삼일포 찾아가니
새긴 글은 완연한데 네 신선 어데 갔는고
예서 사흘 머문 후에 어데 가 또 머물꼬선유담, 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 몇 곳에 앉았던고배꽃(梨花)은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 울제
낙산(洛山) 동쪽으로 의상대에 올라앉아
일출을 보리라 한밤중에 일어나니오색 구름 피어난 듯 여섯 용이 버티는 듯
바다를 떠날 제는 온 천하 요동치니
하늘 높이 치오르니 터럭을 헤리로다아마도 떠도는 구름 근처에 머물세라
시선(詩仙)은 어데 가고 시구(詩句)만 남았느냐
천지간 장한 기별 자세히도 알겠구나저녁별 현산(峴山)의 철죽 꽃 밟아가며
우개(羽蓋) 수레가 경포로 내려가니
십 리 폭 넓은 비단 다리고 다시 다려
장송(長松)으로 울을 삼아 마음껏 펼쳤으니
물결도 잔잔하다 모래알을 헤리로다외로운 배 닻줄 풀어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너머 대양(大洋)이 거기로다
조용하다 이 기상 망망한 저 경계
이보다 갖춘 데가 또 어데 있단 말꼬
홍장(紅粧)의 옛이야기 요란타 하리로다강릉 대도호(大都護)의 풍속이 좋을 시고
절효정문(節孝旌門)이 고을마다 서 있으니
비옥가봉(比屋可封)을 이제도 보겠도다진주관 죽서루 오십천 내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한강의 목멱에 대이고저벼슬살이 유한하고 풍경은 탐탁하여
회포도 하도 많고 객수(客愁)도 둘 데 없다
신선 배 띄워서 하늘(斗牛)로 향해갈까
신선을 찾으려 단혈(丹穴)에 머무를까하늘 끝을 못다 보아 망양정을 올라가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이나 노한 고래 그 누가 놀랬길래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지고
은산(銀山)을 꺾어내어 천지사방(六合) 내리는 듯
오월 장천에 백설은 무슨 일꼬어느덧 밤이 들어 풍랑이 진정커늘
부상(扶桑) 가까이 명월을 기다리니
서광(瑞光) 천길이 보이는 듯 숨는구나
구슬발(珠簾) 다시 걷고 옥섬돌 고쳐 쓸며
샛별 돋도록 바로 앉아 바라보니
백련화 한 가지를 그 누가 보내신고이처럼 좋은 세계 남들 모두 다 뵈고저
신선술 가득 부어 달더러 묻는 말이
영웅은 어데 가며 네 신선 그 뉘던가
아무나 만나보아 옛 기별 묻자하니
신선 사는 동해는 멀기도 하구나솔뿌리 베고 누워 풋잠을 얼풋 드니
꿈에 한 사람이 날더러 이른 말이
그대를 내 모르랴 하늘(上界)의 진선(眞仙)이라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고
잠깐 동안 가지마오 이 술 한잔 먹어보오북두성을 기울여 창해수 부어내어
저 먹고 날 먹이고 서너 잔 기울이니
봄바람(和風)이 솔솔 두 겨드랑 추켜든다
구만 리 장공(長空)에 자칫하면 날겠도다이 술 가져다가 사해에 고루 나눠
억만 창생(蒼生)을 다 취케 만든 후에
그제야 다시 만나 또 한잔 하자꾸나
말 끝나자 학을 타고 하늘(九空)에 올라가니
공중 옥저 소리 어제던가 그제던가나도 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르거니 가인들 어찌 알리
명월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 없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치질 못할 고질병(泉石膏황: 천석고황)이 되어, 창평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었는데, (임금님께서) 8백 리나 되는 강원도 관찰사의 직분을 맡겨 주시니, 아아, 임금님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그지없다. 경북궁 서문인 연추문으로 달려 들어가 경회루 남쪽 문을 바라보며 임금님께 하직을 하고 물러나니, 이미 임금님의 신표인 옥절이 앞에 서 있다. 평구역(양주)에서 말을 갈아 타고 흑수(여주)로 돌아드니, 섬강(원주)는 어디인가? 치악산(원주)이 여기로구나.
소양강의 흘러내리는 물이 어디로 흘러든다는 말인가(임금 계신 한강으로 흘러들겠지)? 임금 곁을 떠나는 외로운 신하가 서울을 떠나매 (우국지정으로) 백발이 많기도 많구나.
동주[철원]의 하룻밤을 겨우 새우고(날이 새자마자) 북관정에 오르니, 임금 계신 서울의 삼각산 제일 높은 봉우리가 웬만하면 보일 것도 같구나. 옛날 태봉국 궁예왕의 대궐 터였던 곳에 까막까치가 지저귀니, 한 나라의 흥하고 망하던 역사를 아느냐? 모르느냐?
이 곳이 옛날 한(漢)나라에 있던 '회양'이라는 이름과 공교롭게도 같구나. 중국의 회양 태수(太守)로 선정을 베풀었다는 급장유의 풍채를 이 곳 회양에서 다시 볼 것이 아닌가?
감영 안이 무사하고, 시절이 삼월인 때, 화천(花川)의 시냇길이 금강산으로 뻗어 있다. 행장을 간편히 하고, 돌길에 지팡이를 짚고, 백천동 옆을 지나서 만폭동 계곡으로 들어가니, 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용의 꼬리 같은 폭포가 섞어 돌며 내뿜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퍼졌으니, 멀리서 들을 때에는 우뢰소리(천둥소리) 같더니, 가까이서 보니 눈이 날리는 것 같구나!
금강대 맨 꼭대기에 학이 새끼를 치는데, 옥피리처럼 들리는 봄바람 소리에 선잠을 깨었던지, 흰 저고리 검은 치마로 단장한 학이 공중에 치솟아 뜨니, 서호의 옛 주인 임포를 반기듯 나를 반겨 넘나들며 노는 듯하구나!
소향로봉과 대향로봉을 눈 아래 굽어보고, 정양사 뒤 진헐대에 다시 올라 앉으니, 여산같이 아름다운 금강산의 참모습이 여기서야 다 보인다. 아아, 조물주의 솜씨가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봉우리들이 하늘로 날거든 뛰지 말거나, 섰거든 솟지 말거나, 부용을 꽂았는 듯, 백옥을 묶었는 듯, 동해를 박차는 듯, 북극성을 괴고 있는 듯하구나.높기도 하구나 망고대여, 외롭기도 하구나 혈망봉이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아뢰려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굽힐 줄 모르는가?(그 지조가 놀랍구나.) 아, 너(망고대, 혈망봉)로구나. 너같은 높은 기상을 지닌(지조가 높은) 것이 또 있겠는가?
개심대에 다시 놀라 중향성을 바라보며 만 이천 봉을 똑똑히 헤아리니, 봉마다 맺혀 있고, 산끝마다 서린 기운, 맑거든 깨끗하지 말거나, 깨끗하거든 맑지나 말 것이지, 맑으면서도 깨끗하니, 저 맑고 깨끗한 기운을 흩어 내어 뛰어난 인재를 만들고 싶구나. 모습도 그지없고 형세도 다양하다. 천지가 생겨날 때에(만 이천 봉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제 와서 보게 되니 조물주의 깊은 뜻이 담겨 있구나.
금강산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 본 사람이 누구이신가?(아마도 없으리라.) (공자님은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음을 알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다고 했으니,) 동산과 태산의 어느 것이 높던고? 노나라가 좁은 줄도 우리는 모르는데, 하물며 넓거나 넓은 천하를 공자는 어찌하여 작다고 했는가? 아! 공자와 같은 그 높고 넓은 경지를 어찌하면 알 수 있겠는가?(공자의 호연지기를 도저히 따를 수 없네.) 오르지 못하는데 내려감이 이상할까
원통골의 좁은 길을 따라 사자봉을 찾아가니, 그 앞의 너럭 바위가 화룡소(化龍沼)가 되었구나. 마치 천 년 묵은 늙은 용이 굽이굽이 서려 있는 것같이 밤낮으로 물을 흘러 내어 넓은 바다에 이었으니, (저 용은)바람과 구름을 언제 얻어 흡족한 비를 내리려느냐? 그늘진 낭떠러지에 시든 풀을 다 살려 내려무나.(선정의 포부가 나타나 있다.)
마하연, 묘길상, 안문재를 넘어 내려가 썩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 불정대에 오르니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이 공중으로 솟아있고,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이) 은하수 큰 굽이를 마디마디 잘라내어 실처럼 풀어서 베처럼 걸어 놓았으니, 산수도경에는 열 두 굽이로 그려 놓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더 되어 보인다. 만일, 이백이 지금 있어서 다시 의논하게 되면, 여산 폭포가 여기(십이 폭포)보다 낫다는 말은 못 할 것이다.
내금강 산중의 경치만 매양 보겠는가? 이제는 동해로 가자꾸나. 남녀를 타고 천천히 걸어서 산영루에 오르니, 눈부시게 반짝이는 푸른 시냇물과 여러 소리로 우짖는 산새는 나와의 이별을 원망하는 듯하고(감정이입), 깃발을 휘날리니 오색 기폭이 넘나드는 듯하며, 북과 나팔을 섞어 부니(풍악을 울리니) 바닷구름이 다 걷히는 듯하다. 모랫밭 길에 익숙한 말이 취한 신선(작자)을 비스듬히 실어, 바다를 곁에 두고 해당화 핀 꽃밭으로 들어가니, 백구야 날지 마라, 내가 네 벗인 줄 어찌 아느냐?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옥황 상제가 거처하던 백옥루의 남은 돌기둥이 다만 네 개만 서 있는 듯하구나. 옛날 중국의 명장(名匠)인 공수(工수)가 만든 공작품인가? 조화를 부리는 귀신의 도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 기둥은 무엇을 본 떴는가?
고성은 저 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뚜렷이 남아 있으나, 이 글을 쓴 사선은 어디 갔는가? 여기서 사흘 동안 머무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던고? 선유담, 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를 비롯하여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가?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낙산사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에 올라 앉아,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쯤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여러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해가 바닥에서 솟아오를 때에는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하늘에 치섯아 뜨니 가는 터럭도 헤아릴만큼 밝도다. 혹시나 지나가는 구름이 해 근처에 머무를까 두렵구나(이백의 시구 인용). 이백은 어디 가고(간신배가 임금의 은총을 가릴까 염려스럽다는) 시구만 남았느냐? 천지간 굉장한 소식이 자세히도 표현되었구나.
석양 무렵 현산의 철쭉꽃을 잇따라 밟으며, 새깃으로 뚜껑을 한 우개지륜을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십 리나 뻗쳐 있는 얼음같이 흰 비단을 다리고 다시 다린 것 같은, 맑고 잔잔한 호숫물이 큰 소나무 숲으로 둘러싼 속에 한껏 펼쳐져 있으니, 물결도 잔잔하기도 잔잔하여 물 속 모래알까지도 헤아릴 만하구나. 한 척의 배를 띄워 호수를 건너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동해가 거기로구나. 조용하구나 경포의 기상이여, 넓고 아득하구나 저 동해의 경계여, 이 곳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갖춘 곳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과연 고려 우왕 때 박신과 홍장의 사랑이 호사스런 풍류이기도 하구나.강릉 대도호부의 풍속이 좋기도 하구나.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하여 세운 정문이 동네마다 널렸으니, 즐비하게 늘어선 집마다 모두 벼슬을 줄 만하다는 요순 시절의 태평 성대가 지금도 있다고 하겠도다.
진주관[삼척] 죽서루 아래 오십천의 흘러 내리는 물이 (그 물에 비친)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옮겨)가니, 차라리 그 물줄기를 임금 계신 한강으로 돌려 서울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정은 유한하고, 풍경은 볼수록 싫증나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고, 나그네의 시름도 달랠 길 없구나. 신선이 타는 뗏목을 띄워 내어 북두성과 견우성으로 향할까? 사선을 찾으러 단혈에 머무를까?
하늘의 맨 끝을 끝내 못보고 망양정에 올랐더니, (수평선 저 멀리)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가뜩이나 성난 고래(파도)를 누가 놀라게 하기에, 물을 불거니 뿜거니 하면서 어지럽게 구는 것인가? 은산을 꺾어 내어 온 세상에 흩뿌려 내리는 듯, 오월 드높은 하늘에 백설(파도의 물거품)은 무슨 일인가?
잠깐 사이에 밤이 되어 바람과 물결이 가라 앉거늘, 해 뜨는 곳이 가까운 동햇가에서 명월을 기다리니, 상서로운 빛줄기가 보이는 듯하다가 숨는구나.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을 다시 걷어 올리고 옥돌같이 고운 층계를 다시 쓸며, 샛별이 돋아오를 때까지 꼿꼿이 앉아 바라보니, 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흰 연꽃같은 달덩이를 어느 누가 보내셨는가? 이렇게 좋은 세상을 다른 사람 모두에게 보이고 싶구나. (온 백성에게 은혜가 골고루 미치도록 선정을 베풀고 싶다.) 신선주를 가득 부어 손에 들고 달에게 묻는 말이, "옛날의 영웅은 어디 갔으며, 신라 때 사선은 눅누구더냐?" 아무나 만나 보아 영웅과 사선에 관한 옛 소식을 묻고자 하니, 선산이 있다는 동해로 갈 길이 멀기도 하구나.![]()
(드러난)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선잠이 잠깐 드니, 꿈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르기를, "그대를 내가 모르겠느냐? 그대는 하늘 나라의 신선이라, 황정경 한 글자를 어찌 잘못 읽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가? 잠깐 동안 가지 마오. 이 술 한 잔 먹어 보오." 북두 칠성과 같은 국자를 기울여 동해물 같은 술을 부어 저도 먹고 나에게도 먹이거늘, 서너 잔을 기울이니 온화한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양 겨드랑이를 추켜 올리니, 아득한 하늘도 웬만하면 날 것같구나. "이 신선주를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눠 온 백성을 다 취하게 만든 후에, 그 때에야 다시 만나 또 한 잔 하자꾸나." 말이 끝나자, 신선은 학을 타고 높은 하늘에 올라 가니, 공중의 옥퉁소 소리가 어제던가 그제던가 어렴푹하네.나도 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르는데 하물며 가인들 어찌 알리. 명월이 온 세상에 아니 비친 곳이 없다.
갈래 : 양반가사, 기행가사, 서정가사, 정격가사
연대 : 선조13년(1580년),작자45세때
배경사상 : 충의, 애민, 도교적 신선 사상
구성 : 서사-본사-결사의 3단 구성(시간,여정에 따른 추보식구성)
가치 : 우리말 구사력이 뛰어난 가사문학의 대표작.
주제 : 관동 지방의 절경 유람과 연군, 애민의 정
출전 : '송강가사' 이선본(李選本), 숙종 16년(16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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