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is(한국사) 125

5.16쿠데타, 성공의 미스터리

○ 개요 - 1961.5.16.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젊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5월 16일 새벽 탱크와 총을 앞세운 군인들이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강 인도교를 건너야 하는데 쿠데타군이 다리를 건너려 할 때는 이미 진압군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 쿠데타를 포기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 박정희 소장, 그 사이 쿠데타군과 진압군 간의 교전이 벌어지는데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쿠데타군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확인해 본다. - 5.16쿠데타의 그날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날로 박정희 소장과 육사 5기‧8기 젊은 장교들이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 추적 그날, 5.16쿠데타 - “5.16은 국군의 0.5%가 참여한 쿠데타” 동원된 병력은 3,400~..

K-his(한국사) 2020.08.31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 반민특위

○ 개요 - 친일파 청산은 해방 직후 온 국민의 염원, 그 염원에 답하고자 1948년 10월 제헌헌법에 의거 국가기구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 - 반민특위는 출범 초반부터 강력한 추진력을 보이지않고 현재까지도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친일파의 변명 - 대한민국 역사의 핫 이슈 친일파 청산문제, 반민특위 재판의 모습을 담은 영화 이정재의 변명에 몰입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린데도 불구하고 이게 진짠가? 할 정도이고 또 한편으로 보면 독립투사가 억울하게 끌려 나온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유태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1960년 이스..

K-his(한국사) 2020.07.29

피의 일주일, 4.19부터 5.16하야 까지

○ 개요 - 1960. 4. 19.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하라!”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가 이뤄졌다. 186명이 사망하고 무려 6천여 명이 다치는데...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항거는 들불처럼 번진다. - 1960. 4. 11.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한 소년의 주검, 시신은 발견되자마자 병원으로 옮겨지고 그의 시신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온 마산 시민들, 저지하는 경찰들을 제치고 시신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데 얼굴에 체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 그는 마산상고 입학을 앞둔 예비 신입생 17세 김주열이었다. ○ 17세 김주열의 사망 미스터리..

K-his(한국사) 2020.07.13

막전막후 이승만 정부의 탄생

○ 개요 - 1945. 9. 9.부터 38선 이남에서는 본격적인 미군정이 시작된다. 미군정 최고 사령관 하지 중장은 미국에 우호적인 한국정부 수립을 목표하고 한국 정치 지도자들과 다양하게 접촉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 미국에서 활동한 엘리트 독립운동가 이승만, 해방 직후 조선 인민공화국을 주도한 중도 좌파 여운형, 임시정부 부수석을 역임하고 좌우합작 운동에 힘쓴 김규식,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이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정치 드라마, 그 3년의 기록을 살펴본다. ○ 미군정과 이승만 지지 - 해방 직후 좌파 세력이 우세했던 남한의 환경, 이러한 환경을 바꾸고 미군정에 대해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했는데 이승만 박사가 가장 적임자다고 판단을 했던..

K-his(한국사) 2020.07.06

청산되지 못한 역사, 제3편 친일파의 명작 스캔들

○ 개요 -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데 앞장섰던 문화‧예술‧교육계의 친일파들, 뛰어난 필력 ‧ 언변을 가졌던 이들은 당시 ‘시대의 스승’으로 대접받으며 큰 권위를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젊은이들을 전장(戰場)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데 기꺼이 자신이 가진 재능과 영향력을 사용했던 이들의 친일 행적을 집중 조명해본다. - 1939년 7월 중일전쟁 중 첫 조선인 전사자(戰死者) 발생, 당시의 언론에서는 ‘지원병 최초의 꽃’이라고 미화했다. 다음 날은 그의 가족까지 찾아가 “전사(戰死)는 남자의 당연사(當然事)”라는 인터뷰까지 받아낸다. 무고한 전쟁의 희생자가 전쟁영웅이 되는 데에는 조선 문인들의 역할이 크다. ○ 침략전쟁의 희생자가 전쟁 영웅? - 문단의 큰 별에서 친일로 변절한 주요한(1900~197..

K-his(한국사) 2020.06.26

청산되지 못한 역사, 제2편 친일의 변명

○ 개요 -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숙원을 담아 친일파를 법의 심판대로 소환한다. 법의 심판을 앞두고 친일파들은 각양각색의 최후 변론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단죄는 없었다. 친일파의 변명에 그친 미완의 심판, 끝나지 않는 그날의 질문을 다시 이어간다.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민족의 숙원을 담은 세 번째 법률공표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라!” 조사 682건, 체포 305건, 자수 61건 - 1949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공판, 친일파들의 최후 변론은? ① “잘못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반민족행위를 재판받는다는 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를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주십시오.” 뒤늦은 석고대죄 형(우는 놈) ② “난 그저 꼬스까이(심부름 꾼)에..

K-his(한국사) 2020.06.18

청산되지 못한 역사, 제1편 친일파의 탄생

○ 개요 - 근대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친일파, 최악의 친일파는? KBS시청자에게 SNS를 통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 이완용, 2위 노덕술, 3위 민영휘로 대답했다 - 이완용은 을사5적 ‧ 정미7적 ‧ 경술국적에 모두 포함하여 팔아서는 안될 것을 팔아 누려서는 안 될 것을 누린 자로 지식인으로서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기록되고 해방 후 민족반역자들을 척결하지 못해서 지식인 중에도 이완용의 후예가 계속 나오는 현실이다 - 한철호(동국대 역사학과 교수)가 꼽은 최악의 친일파는 부정부패로 나라를 망하게 하고 친일행위로 부와 권력을 챙긴 매국친일파들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민영휘이고 최근 친일파의 논쟁이 많았는데 시청자들이 꼽은 현역정치인도 다수 등장 ※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에 수..

K-his(한국사) 20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