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야, 파도야! - 혼을 불사르는 가선(歌仙) 박진광
박진광은 널리 알려져 있는 가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또 그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특히 나이를 좀 먹었다면 틀림없이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흔히 박진광을 가리켜 가선(歌仙)이라 한다. 가선, 노래하는 신선…… 우리는 흔히들 노래를 아주 잘하는 사람의 이름 앞에 가인(歌人)이란 말을 많이들 붙이곤 한다. 그런데 노래하는 신선이라는 박진광은 사실 가인과는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저 깊은 산 속에 은둔했던 도인이 홀로 세상을 음미하듯 노래하는 신선이 된 모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걸어온 길 자체가 그렇게 말해 준다.
쇼 비즈니스 혹은 엔터테인먼트의 차원을 넘어, 정말로 순수하게 삶으로서의 음악을 대해왔고, 슬프고 고독한 무명의 세월을 한숨의 술과 너털웃음으로, 라이브 기타 현의 떨림으로, 이마에 땀이 흠뻑 젖은 노래하는 모습으로 털어버리는…… 그런 그의 모습은 진정 '노래하는 신선' 즉 가선(歌仙)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가선(歌仙) 박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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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라이브 카페 '쉘부르'에서 한국 모던포크의 대명사 격인 'DJ 이종환 사단'의 한 일원으로 출발한다. 그 시절 가수가 다 그렇듯 그도 쪽방과 쓴 소주와 기타 하나로 노래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 다들 그렇듯이, 실패한 두어 장의 앨범을 내고는 가요계에 한 개의 점도 찍지 못하고 한 때 무명가수의 한을 남기며 사라졌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DJ 이종환 사단은 다 떴다. 그런데 그는 왜 뜨지 못했을까?' 충분히 제기 할 수 있는 의문이다. |
사실 그 시절 그가 부른 서너 곡 쯤의 번안 가요와 포크 송 속에 대중적 인기를 받을 만한 노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초창기 노래는 그 시절 가요와는 전혀 다른 레나드 코헨류의 읊조리는 스타일로 그것이 바로 그 만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속된 말로 뜰 수 없었다. 분명 박진광은 이종환이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끼는 사람이어서 였을까. 이종환은 방송국의 좋은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그를 밀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술자리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초창기에 도와주지 못한 회한이 있는 듯하게 이런 말을 자주 되뇌인다고 한다.
다시 세월은 흘러 미사리. 그는 미사리 허허 벌판 자투리 땅에 최초로 라이브 카페를 만든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카페는 난리가 난다. 아름아름 그의 라이브 명성을 알아보고 카페에 손님이 차고 넘쳤다. 한때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는 풍문도 들린다. 세상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 허허 벌판이던 미사리가 그의 카페를 시작으로 미사리 전체가 라이브 카페촌으로 바뀌니 말이다. 그가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 건설의 산파인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사 다 그렇듯이 요즈음 미사리를 찾는 사람들 중에 그가 미사리 전설의 황제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던 그가 째즈를 한다고 미사리에서 몇 년전에 사라졌다.
라이브와 통키타와 째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들고온 노래를 들으면 그가 왜 그 긴 시간 동안 외롭고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파도' 그는 칼을 차고 전장에 나서는 무사와 같이, 사랑마저도 인스턴트 커피처럼 쉽게 마시고 버리는 세상에, 무사도(武士道)와 같은 사랑을 이 노래에 담고 있다.
떠나지 말라고 말하면 죽어서 나 떠날 테요. 잊지 말라고 말하면 그 약속 꼭 지킬 거요.
목숨이 다하여야만 주군(主君)을 떠나는 무사(武士)와 같이 사랑하는 이를 지킨다는 약속. 그의 무사도(武士道)와도 같은 사랑 이야기가 바로 그의 노래 '파도' 이다. 읊조리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열변을 토하듯 노래하는 바리톤! 어찌 들으면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웅변이다. 웅변도 피를 토하듯 외치는 절규이다. 그러니 나는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단지 소름만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떨려오며 깊은 감동으로 치닫는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잊지 말라고 말하면 그 약속을 꼭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무사도와도 같은 사랑, 주군과 신하의 맹세와도 같은 사랑이다.
아하―― 하― 하― 저기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이 불어온다 누가, 누가, 누가 날 떠나간다.
그렇게 말하던 님이 죽어간다. 죽기 전에 어떤 징조인지 바람이 분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구태여 폭풍이 불어온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이 그것을 충분히 나타내고도 남는다. 불길한 징조이다. 그리고 님이 죽는다. 그냥 님이 아니다. <누가, 누가, 누가> 나를 떠나가는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아주 간단한 것인데, 노랫말은 완전히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리고 웅변이 되고 절규가 된다.
다시는 못 볼 그 사람 죽어도 못 볼 그 사람 평생 저 파도라 부르고 싶다.
죽는 님은 이제는 못 볼 사람이다. 다시는 못볼 사람이요 죽어서도 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님을 향한, 주군을 향한 무사의 심정은 오로지 충성, 즉 파도가 되고 싶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육지로 몰아치는 바다의 물결. 육지가 뭐라고 하건 말건 그저 묵묵히 육지를 향한 물결. 그것이 파도이다. 바로 님을 향한 마음이다.
우--- 우--- 우--- 그렇게 해 달라고 말하면 분명히 난 그럴 거요. 맹세해 달라고 말하면 울면서 꼭 지킬 거요.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님이 해달라는 것이면 어느 것이든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요, 그것이 인륜이나 도덕에 위배된다 할지라도, 지켜서는 안될 것이라 하더라도 님이 원한다면 울면서라도 지킬 것을 맹세한다. 비극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다짐이 있다. 바로 님을 향한 사랑이다. 그렇기에 무사도와도 같은 사랑이라 하는 것이다.
아하--- 하--- 하--- 저기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이 불어온다 누가, 누가, 누가 아--- 울고 있다.
다시 못 볼 그 사람 죽어도 못 볼 그 사람 평생 저 파도라, 파도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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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광의 '파도'를 듣는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물마저 글썽였다. 사실 나는 내가 사랑하던 님이 죽었던 적이 없고, 내가 죽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내 님이 죽고, 내가 내 님이 원하는 것을 맹세하는 것과 같이 주먹이 쥐어졌다. 왜냐하면 박진광이 그렇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열변을 토하듯, 절규하듯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 글 출처 : 이병렬 가요이야기 2005-01-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