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이 조선 방문을 마치고 당시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도쿄 행 열차를 타기 직전의 모습이다.
연미복 입은 수행원들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며 플랫폼을 걷고 있다.
(1918년 1월26일 촬영)
1919년 2월 9일
고종 황제가 승하한 거처인 창덕궁 함녕전에서
일본 왕가 장례의식인 봉고제(장례를 하늘에 알리는 의식)가 열렸다.
서울대박물관 제공 [2006/05/26 15:27]
주한 이탈리아 공사 카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1904),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대한제국멸망사'(1906) 등에 실린 사진이다.
호머 헐버트씨는 1906년 발간된 `한국 견문기' 138쪽에서 `궁녀'라고 소개(왼쪽).
(오른쪽)독일 출신 작가의 사진첩에서 나온 것이다.
'시해된 왕비'라는 뜻의 독일어(Die Ermodete Konigin) 설명이 붙어 있고
대원군의 평상복 사진과 배경이 같아 일부에서는 명성황후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1890년대 초반 발간된
미국 국립박물관 보고서, 영국 잡지화보 등에
'조선의 궁녀'라는 설명과 함께 실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위 왼쪽 사진 <고종, 순종>
오른쪽 ;독일어로 ‘Palastdame’(궁녀),
영어로 ‘Attendant on The King of Korea'(조선 왕의 시종)란 설명이 붙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