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시사)

파라오의 저주로 죽었다던 사람들, 살해됐다

mkpark2022 2011. 11. 9. 22:08

 

1922년 11월4일 나일 강 중류 룩소르파라오의 무덤, '왕가의 계곡'을 발굴하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의 인부가 무덤으로 통하는 계단의 흔적을 발견했다. 11월26일 카터는 카르나본 경과 함께 무덤의 문을 열었고, 그곳에서 18세에 요절한 비운의 젊은 파라오 '투탕카멘'의 미라를 발견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선 110kg 황금관과 황금마스크 등 금은보화와 각종 유물 1700점이 쏟아져나왔고, 이 발굴은 현대 이집트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조선일보]파라오의 저주로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살해자로 지목된 알레이스터 크롤리/출처=데일리메일

 

 

 

 

 

하지만 정작 투탕카멘이 유명해 진 것은 발굴과 관계된 사람들의 연이은 의문의 죽음 때문이었다.

카터와 무덤을 발굴한 카르나본 경은 발굴 6주 만에 투탕카멘의 얼굴 상처 부위와 같은 곳을 모기에 물려 죽었고, 조카 오베리 허버트는 1923년 9월 돌연사했다. 미국 철도계의 거물 조지 J 굴드도 무덤을 본 다음 날 폐렴으로 죽었으며 투탕카멘의 미라를 조사하기 위해 이집트에 왔던 X선 촬영 사진기사 아치볼드 더글러스 라이드는 1924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이집트인 알리 케멜 화미베이는 무덤을 본 뒤 자신의 아내가 쏜 총에 맞아 죽었고, 영국의 실업가 조엘 울,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조지 방디트, 카르나본의 부인, 카터의 비서 리처드 베텔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20여명의 사람이 의문 속에 죽었다.
사람들은 이집트의 젊은 파라오가 자신의 무덤에 손을 댄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려 연이은 의문의 죽음이 발생했다며, 이를 두고 '파라오의 저주', '투탕카멘의 저주'라고 불렀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2011년 한 역사학자가 의문의 죽음이 파라오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역사학자 마크 베이논은 연이은 의문의 죽음 중 적어도 6건은 한 악명높은 악마주의자의 소행이라고 했다. 그가 지목한 살인범은 알레이스터 크롤리. 베이논은 크롤리가 '감히'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살해의식'을 치렀다고 했다. 크롤리는 고대 이집트의 종교철학과, 신·여신 등에 빠져 있었다.
베이논은 크롤리의 경찰심문기록, 일기, 글, 그리고 책을 분석했고 그가 19세기 영국의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를 흉내 냈다고도 했다.

베이논이 크롤리의 희생자로 지목한 사람들은 모두 런던에서 숨을 거뒀다. 옥스퍼드대학의 학생이었던 라울 러브데이, 이집트인 알리 케멜 화미베이, 카르나본의 조카 오베리 허버트, 비서 리처드 베텔, 베텔의 아버지 웨스트베리, 에드가 스틸, 그리고 대영박물관 이집트 아시리아관 전직 책임자 어니스트 왈리스 버지경이 그들이다.

베이논에 따르면 러브데이는 크롤리가 거행한 (악마) 의식에 사용됐던 고양이의 피를 마신 뒤 숨졌다. 화미베이는 부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는데 부인인 마리 마거릿은 크롤리와 내연관계였다. 투탕카멘의 묘가 발견된 룩소르에서 돌아오자마자 살해된 허버트는 마거릿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이며, 베텔은 크롤리가 자주 들렀던 사교클럽의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논은 그동안 7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던 웨스트베리와 침대에서 발견된 버지경의 죽음에도 크롤리가 개입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양승식 기자|
입력 2011.11.09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