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팝)

乾杯 건배 / Nagabuchi Tsuyoshi

mkpark2022 2009. 7. 24. 08:42

        

 

 

 

 

 

 

 

 

 

   
 
 
 
 
 
 

乾杯 건배 / Nagabuchi Tsuyoshi

かたい絆に想いをよせて
질긴 인연에 마음을 주면서

語りつくせぬ靑春の日び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청춘의 나날

時には傷つき時には喜び
때로는 상처입고, 때로는 기뻐하며

肩をたたきあったあの日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던, 그날들...

あれからどれくらいたったのだろう
그로부터 얼마나 지난 것일까?

沈む夕日をいくつ數えたろう
지는 저녁 해를 얼마나 헤아렸을까?

故鄕の友は今でも君の 
고향 친구는 지금도 그대의 

心の中にいますか
마음속에 있습니까...

乾杯! 今君は人生の大きな大きな舞台に立ち
건배! 지금 그대는 인생의 커다란, 크나 큰 무대에 서서

遙か長い道のりを步き始めた 君に幸せあれ!
아득히 긴 여정을 걷기 시작한 거야 그대에게 행복 있으라!
 
 
 
 
 
キャンドルライトの中の二人を
촛불을 마주한 두사람을

今こうして目を細めてる
지금 이렇게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어

大きな喜びと少しのさびしさを
큰 기쁨과 작은 외로움을

淚の言葉で歌いたい
가슴 아프게 노래하고 싶어

明日の光を身にあびて
내일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ふりかえらずにそのまま行けばよい
뒤돌아 보지말고 그대로 가면 되는거야

風に吹かれても雨に打たれても
바람이 불어도, 비에 시달려도

信じた愛に背を向けるな
한번 믿은 사랑에 등을 돌리지 마...

乾杯!今君は人生の大きな大きな舞台に立ち
건배! 지금 그대는 인생의 커다란, 크나 큰 무대에 서서

遙か長い道のりを步き始めた君に幸せあれ!
아득히 긴 여정을 걷기 시작한 그대에게 행복 있으라!

乾杯!今君は人生の大きな大きな舞台に立ち
건배! 지금 그대는 인생의 커다란, 크나 큰 무대에 서서

遙か長い道のりを步き始めた君に幸せあれ!
아득히 긴 여정을 걷기 시작한 거야 그대에게 행복 있으라!

君に幸せあれ!
그대에게 행복 있으라
 
 
 
  
 
 
생 일 : 1956년 9월 7일
출 신 : 가고시마(鹿兒島)현
신 체 : 키 175cm, 액형 A
가 족 : 1987년 시호미 에츠코(志穗美悅子)와 결혼
데 뷔 : 1978년 도시바EMI 통해 [巡戀歌]로
소 속 : '포라이프(フォ-ライフ)

1975 ~ 규슈에서 대학입학과 동시에 라이브 활동 시작
1976 ~ 야하마 주최 제15회 팝스 콘테스트 입상
1978 ~ '준렌카(巡戀歌>'로 데뷔
1980 ~ '준코(順子)' 80만장 이상 판매
1997 ~ 히마와리(해바라기) 오리콘 첫 등장 5위
1976 ~ 야마하 팝스콘테스트 입상
1987 ~ 앨범 LICENSE로 레코드 대상, 앨범 대상

"기타를 맨 절대 고독의 풍운아! 일본 포크세대의 자존심!!"

 

 

 


     

     

     Tsuyoshi  Nagabuchi 



    출생지 : 일본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日置郡 伊集院町 生木村
    본 명 : 나가부치쯔요시(剛)
    생년월일 : 1956년(昭和31년) 9월 7일생(乙女座)

    혈액형 :  A형
    가족사항 : 아버지(전직 형사), 어머니(작고), 누나(1951년생)

    유년시절 에피소드

    생후
    출생 후 28일 째 천식 때문에 유행성 감기에 걸려 호흡이 완전히 정지됐었지만

    링거 한 병을 맞고 기적적으로 소생

    유·소년기
    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서 어릴 때부터 여러번 이사를 했지만,

    아버지와 떨어져 생활하는 시간도 많음(아버지는 서가고시마 역전 출장소에서 정년을 맞음)
    오래된 파출소 관사에는 TV가 없었기 때문에 유치원 친구인 카요코의 집에서 TV 시청(유치원은 ‘토     소 유치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나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무의식적으로 부른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    아 있었음
    선천적으로 병약한 몸이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정신을 살찌우면서 자람

    출신학교
    1963년(昭和38年) 4월 : 가고시마시립중군(中郡)소학교 입학
    1969년(昭和44年) 4월 : 가고시마시립갑남(甲南)중학교 입학(농구부 소속)
    1972년(昭和47年) 4월 : 가고시마현립남고등학교 입학
    1975년(昭和50年) 4월 : 규슈(九州)산업대학 경영학부 입학
    1978년(昭和53年) 8월 : 규슈(九州)산업대학 중퇴


    학창시절
    소학교 시절
    소학생 무렵부터 남 앞에서 노래를 잘 부름

    중학생 무렵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잘한다고 선생님이나 동료에게 자주 칭찬을 들음
    그 무렵 자주 부르던 노래는 西鄕輝彦의 ‘별의 플라맹고'였지만, 실제로는 橋幸夫를 좋아했음
    낯가림이 심해서 좀처럼 친구도 사귀지 못했으며, 여럿이 어울려 노는 것을 모르고 방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소년이었음
    하지만 몸이 건강해지면서 점차 성격도 변했고, 행동력과 적극성을 가지게 됨
    기타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음


    고등학생 무렵
    중학교 친구가 기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이 세상에 그처럼 훌륭한 악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음
    그 이후 곧바로 가고시마 시내에서 제일 큰 레코드점인 ‘십자성'에서 3,500엔을 주고 클래식

    기타를 구입
    기타를 구입한 후 기타에 사로잡혀 식음을 전폐하고 기타 연습에 열중
    중학교 친구 우에노(上野)군이 3학년 어느 날 요시다타쿠로(吉田拓郞)의 ‘마크 II'를 모두 앞에서 연주   하는 것을 보고 놀람
    가고시마 시민회관에서 포크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는데 그것이 생애 처음으로 본 라이브 콘서트였음
    ※ 특히 요시다타쿠로에게 받은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의 곡을 카피
    그 무렵 어머니가 보다 못해 1만 엔을 주었고, 2번째 기타를 1만 2천 엔에 구입
    고교 1학년 가을, 처음으로 무대를 경험(가고시마 경제대학 학원제의 ‘前座' 콘서트)
    고교 2학년 가을, 친구 두 명과 T&T(무사와 쯔요시(武士와剛))를 결성
    고교 3학년 가을 : 교내 문화제에서 관객을 2,000명 넘게 동원하여 놀라게 함. 그 관객 중 한 명이었던   남일본 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친구 누나의 눈에 띄어 라디오 출연이 결정

     (출연 프로그램명 : 지금은 안전 운전중)   ※ 프로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 이 무렵이었음

    대학시절
    규슈산업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후쿠오카의 라이브카페 ‘쇼와'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음

    쇼와에서의 라이브 활동
    주 1회 2스테이지
    개런티는 1스테이지에 800엔으로 합계 1,600엔 이었음
    그러나 왕복 교통비가 300엔, 출연 때마다 반드시 기타 줄을 바꿔야 했기 때문에 그 비용이

    1,500엔으로 매번 적자였지만,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음. 오직 노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음
    1976년 10월, ‘쇼와'에서 제12회 팝콘테스트에 응모
    첫 응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선까지 진출을 하고, 다수의 레코드회사 협찬 상을 수상했으며,

    대단한 가창력과 안정된 보컬로 크게 주목받음

    가수 데뷔
    1977년 2월 25일, 빅타(VICTOR) 레코드를 통해 「비의 아라시야마(雨の嵐山)」로 데뷔
    그 무렵 후쿠오카 지역에 한정된 CM송 의뢰가 들어옴
    개런티 1만 엔에 부른 ‘新宮靈園'이라고 하는 묘지의 광고였음
    ※ 묘지 CM송인데도 그 고운 목소리로 상당한 기교를 부려 낭만적으로 부름

    가수활동 개시
    데뷔 홍보를 계속하면서 삿포로에서 후쿠오카까지 쫓아다녔지만, 인사만 시키고 실제로 온전히 노래   를 부르게 해 주지 않는 날들이 계속됨
    이 때 사용된 예명은 「나가부치 고우」였음
    자신이 생각했던 가수생활과 너무 다른 현실에 갭을 느끼고, 이를 견디지 못해 3개월 만에

    후쿠오카로 돌아감
    후쿠오카로 돌아와 ‘쇼와'에서 라이브 활동을 계속함
    그리고 제15회 팝콘테스트에 「巡戀歌」로 다시 도전, 규슈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시즈오카    현에서 열린 본선대회에서 입상
    1978년 10월 5일, 東芝 EMI 레코드에서 「巡戀歌」로 다시 데뷔

    1978년
    규슈 지역 백화점 옥상 콘서트 투어 시작
    미나미고우세스의 콘서트 게스트로 결정되어 처음으로 큰 홀의 스테이지를 오사카 페스티벌

    홀에서 갖게 됨
    잡지 취재도 결정
    11월, 동경에서 처음으로 스테이지에 섰음
    11월 3일, 일본 대학 학예부 대학축제 때 라디오실에서 미니 콘서트 개최
    ※ 20명의 관객 앞에서 한 콘서트로서 「환상의 콘서트」라고 불리고 있음
    첫 번째 앨범 레코딩 시작
    ※ 50곡 중에서 엄선에 엄선을 거듭해 레코딩
    올나이트 닛폰 프로그램의 「통기타 한 대의 승부 코너」 진행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킴

    1979년
    쇼우노마요의 콘서트 투어 게스트로 결정
    3월 5일, 2번째 싱글 「俺らの家まで」 발표
    1번째 앨범 「風は南から」 발표
    미나미고우세스 콘서트 투어의 게스트 활동 재개
    각지에서 대 반향을 불러일으켜 「風は南から」가 레코드 차트로 최고 15위에 랭크되고, 롱셀러를  계속하면서 15만 장를 판매해 탑 아티스트의 대열에 동참
    4월, 올나이트 닛폰(목요일 제2부) 방송 진행 개시와 동시에 2만 통이 넘는 엽서가 도착함으로써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됨
    4월 17일, 大博多 홀에서 원맨 콘서트가 개최되고 TV 아사히의 가요 히트 속보로 생중계

    6월 원맨 콘서트가 각지에서 시작
    요시다타쿠로를 만나 시노시마 이벤트의 게스트 출연에 대한 협의를 가짐
    7월 5일, 3번째 싱글 「祈り」 발표.
    7월 22일,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의 「80's JAM」에 출연
    7월 26일, 아이치현 시노시마의 「요시다타쿠로 아일랜드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
    ※ 이 콘서트에서 나가부치쯔요시의 근성을 나타내는 유명한 에피소드 발생
    9월 7일, 23번째 생일부터 전국 80개소 콘서트 투어 개시
    10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올나이트 닛폰의 제1부의 DJ로 승격되면서 인기가 더욱 급상승

      (금요일 담당)
    11월 5일, 2번째 앨범 「逆流」 발표
    ※ 앨범 「逆流」 베스트 앨범상 수상

    1980년
    1월부터 6월까지 전국 60개소 콘서트 투어 개시(乾杯)
    1월, 올나이트 닛폰 진행시 이시노마코가 게스트로 출연
    ※ 나가부치쯔요시와 이시노 마코는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결혼까지 약속하기에 이름
    3월 20일, 싱글 「春待氣流」 발표
    6월 5일, 싱글 「順子」 발표
    7월 31일, TBS의 ‘The! Best TEN'에서 「順子」가 4위를 차지함으로써 첫 TV 출연
    ※ TV 방송에 출연해 「順子」를 부르다가 관객들이 손장단을 맞추자 노래를 멈춤.

    順子」는 슬픈 실연의 노래이기 때문에 손장단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8월 18 , 「順子」가 처음으로 차트 No.1차지, 대히트
    9월 6일, 「TSUYOSHI NAGABUCHI CONCERT TOUR」 시작(전국 17개소)
    9월 5일, 앨범 「乾杯」 발표
    10월 5일, 싱글 「ヒロイン」 발표

    1981년
    1월, 調布클린홀에서 투어 마지막 날을 맞음. 이 날의 스테이지 실황이 앨범 「LIVE」에 수록
    3월 5일, 앨범 「 LIVE 」 발매
    3월 3일, 「TSUYOSHI NAGABUCHI CONCERT TOUR '81~'82」가 시부야 회당에서부터 시작
    ※ 140곳을 도는 장기 콘서트 투어. 처음으로 백 뮤지션이 가세
    5월 5일, 싱글 「夏の戀人」 발표
    10월 1일, 앨범 「Bye Bye」 발표
    10월 21일, 싱글 「二人步記」 발표

    「二人步記」는 결혼을 약속한 이시노마코에게 바치는 노래

    1982년
    1월, 이시노마코와 하와이에서 결혼
    4월 21일, 싱글 「花いちもんめ」 발표
    6월 6일, 「TSUYOSHI NAGABUCHI CONCERT TOUR'81~'82」 파이널
    ※ 파이널 콘서트를 장식한 日比谷野外音樂堂에서 이례적으로 6,000명의 관객을 동원
    7월, 새 앨범 레코딩을 위해 LA 선팩토리에서 2주간 체류
    7월 28일, 「靑春は手品師」가 TBS系에서 방영된「王貞治物語(`82)」의 주제가로 쓰임
    ※ 나가부치쯔요시 본인은 뒷모습만 출연
    9월 1일, 앨범 「時代は僕らに雨を降らしてる」 발표
    10월 12일, 「CONCERT TOUR '82~'83 時代は僕らに雨を降らしてる」 시작함(전국47개소)
    11월 29일, 첫 일본 무도관 콘서트 개최
    ※ 나가부치쯔요시는 라이브 활동 7년만에 드디어 무도관 스테이지에 섰고, 10,000명의 관객을 동원
    12월 27일, 후쿠오카(福岡) 썬팔레스에서 이 해의 마지막 라이브 개최

    1983년
    4월 1일, 싱글 「戀人時代」 발표
    6월 21일, 앨범 「HEAVY GAUGE」 발표
    7월 25일, 「SUPER LIVE in 西武球場」
    ※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관객 20,000명을 동원
    7월 29일, 나고야 구장에서 개최된 서전올스타즈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
    ※ 본래 조인트 콘서트를 약속했으나, 서전은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나가부치쯔요시에게 개     막 출연 정도만 하도록 함으로써 당시 쯔요시에게 매우 치욕적인 대우를 함
    8월 25일,「 LIVE ‘83 JUST HEAVY GAUGE」 일본 무도관에서 시작
    라이브 앨범 「SUPER LIVE in 西武球場」 발표
    8월 26일,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 「家族ゲ-ム」 시작(TBS)
    9월 1일, 싱글 「GOOD-BYE 靑春」 발표
    11월 28일, 앨범 「FROM T.N.」 발표
    당시 55세였던 어머니가 대장암 대수술을 받음

    1984년
    2월, 「 LIVE '83 JUST HEAVY GAUGE」 투어 종료
    3월~4월, 팬클럽 콘서트 개시
    ※ 이 콘서트는 팬클럽 입회자 한정으로, 기타 연주와 함께 이야기를 겸한 콘서트였음
    3월 21일, 싱글 「孤獨なハ-ト」 발표
    4월 20일, 드라마 「家族ゲ-ム 2」 시작
    8월 18일, 앨범 「HOLD YOUR LAST CHANCE」 발표
    8월 28일, 「CONCERT TOUR '84 HOLD YOUR LAST CHANCE」 시작 (전국 41개소)

    1985년
    3월 30일, 싱글 「久しぶりに俺は泣いたんだ」 발표
    4월 5일, 드라마 「家族ゲ-ムスペシャル」 방송(TBS)
    7월 22일, 싱글 「勇次」 발표
    8월 22일, 앨범 「HUNGRY」 발표
    8월 26일, 「TSUYOSHI NAGABUCHI LIVE '85 HUNGRY」 스타트
    9월 6일, 비디오 「HUNGRY」 출시

    1986년
    1월 22일, 일본 무도관에서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건강 악화로 입원, 나머지 20회 공연 중지
    5월 1일, 앨범 「LOVE SONGS」 발표
    6월 7일, 드라마「親子ゲ-ム」 시작(TBS)
    7월 2일, 싱글 「SUPER STAR」 발표
    7월 23일, 비디오 「明日へ向かって」 출시
    10월 22일, 앨범 「STAY DREAM」 발표
    11월 11일, 「TSUYOSHI NAGABUCHI LIVE '86 STAY DREAM」 스타트(전국 11개소)
    ※ 관객을 사방에 두고 하는 '센터스테이지' 방식으로 스테이지를 이끌어 가는 획기적이고

        독특한 콘서트 스타일로 콘서트 개최 장소마다 기록적으로 관객을 동원함
    12월 20일, 松竹映畵 「男はつらいよ·幸福の靑い鳥」에 게스트로 출연

    1987년
    4월 10일, 드라마 「親子ジグザグ」 시작(TBS)
    5월 25일, 싱글 「ろくなもんじゃねえ」 발표
    8월 5일, 앨범 「LICENSE」을 발표, 대히트
    9월 8일, 「TSUYOSHI NAGABUCHI LIVE '87 LICENSE」 스타트
     (전국 18개소 21회 공연)
    9월 16일, 싱글 「泣いてチンピラ」 발표
    12월 31일, 제29회 일본 레코드 대상의 앨범 대상을 수상

    しほみ えつこ와 재혼

    1988년
    1월 25일, 라이브 데뷔 「LICENSE」 발표
    2월 5일, 싱글
    「乾杯」발표, 밀리언셀러 기록
    3월 5일, 앨범
    「NEVER CHANGE」 발표
    3월 17일, 장녀 아야네(文音) 탄생
    4월 20일, 「TSUYOSHI NAGABUCHI LIVE '88 NEVER CHANGE」 스타트
     (전국 20개소, 21회 공연)
    5월 25일, 싱글 「NEVER CHANGE」발표
    ※ 장녀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혈육의 정을 뜨겁게 노래한 곡
    6월 19일, 최초 동경 돔 콘서트 개최
    메이지 제과 「초콜렛-BODY」의 CM에 첫 출연
    10월 7일, 드라마
    「とんぼ」시작(TBS)
    10월 26일, 싱글 「とんぼ」발표
    12월 3일, 드라마 「うさぎの休日」방송(NHK)
    12월 4일, 앨범 「싱글 콜렉션」발표

    1989년
    2월 2일, 둘째(장남) 와다루(航) 탄생
    2월 8일, 싱글 「激愛」 발표
    3월 11일, 東映映畵 「오르골」 개봉
    3월 25일, 앨범 「昭和」 발표, 밀리언셀러 기록
    3월 29일, 「TSUYOSHI NAGABUCHI '89 昭和」 스타트(전국28개소, 35회 공연)
    12월 8일, 싱글 「しょっぱい三日月の夜」 발표
    12월 23일, 東映映畵 「워터문」 개봉

    1990년
    2월 21일, 라이브 앨범 「LIVE '89」 발표
    7월 25일, 싱글 「JEEP」 발표
    8월 25일, 앨범 「JEEP」 발표
    9월 22일, 「TSUYOSHI NAGABUCHI LIVE '90 JEEP」 스타트(전국 33개소, 45회 공연)
    12월 31일, ‘NHK 홍백가요제'에 베를린에서 생방송으로 출연
       베를린 장벽 앞에서 「親知らず」,「いつかの少年」,「乾杯」를 생방송으로 부름

    1991년
    5월 24일, 라이브 비디오 「カラス」 발표
    10월 10일, 드라마 「しゃぼん玉」 시작(후지TV)
    10월 25일, 싱글
    「しゃぼん玉」 발표, 밀리언셀러 기록
    12월 14일, 앨범 「JAPAN」 발표

    1992년
    3월 6일, 「TSUYOSHI NAGABUCHI LIVE '92 JAPAN」 스타트 (전국 16개소, 20회 공연)
    5월 15일, 동경 돔 콘서트
    ※ 65,000명의 관객 동원(이 인원은 돔 수용인원의 한계임), 티켓은 41분 만에 완전 매진

       동경 돔 사상 첫 기록적인 콘서트 개최
    10월 28일, 싱글 「巡戀歌 '92」 발표
    라이브 비디오 「LIVE '92 JAPAN in 東京돔」 발표
    12월 20일, 사진집 ‘「人間」- あなたに會えてよかった~' 발매

    1993년
    2월 14일, 「TSUYOSHI NAGABUCHI LIVE '93 JAPAN」 스타트 (전국 31개소, 45회 공연)
    9월 22일, 싱글
    「RUN」 발표, 밀리언셀러 기록
    10월 15일, 드라마 「RUN」 시작(TBS)
    11월 1일, 앨범 「Captain of the Ship」 발표

    1994년
    1월, 사무소를 분할해 「오피스 렌(Office REN)」 설립
    2월 28일, 셋째(차남) 렌(蓮) 탄생 
    6월 8일, 라이브비디오 「白の情景」 발표
    8월 10일, 싱글 「人間」 발표
    9월 9일, 「TSUYOSHI NAGABUCHI LIVE '94 Captain of the Ship」 스타트
    ※ 그러나 건강 악화로 3번째 공연에서 중지됨으로써 환상의 콘서트로 남게 됨
    12월 1일, 베스트앨범 「いつかの少年」 발표

    1995년
    1월,
    ‘대마소지' 죄로 체포(3월에 가석방)
    3월 29일, 극작가 구라모토 초대로 홋카이도(후라노)에 4박 5일의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30여 명의 학생들과 미니 콘서트 개최
    7월 5일, 2매로 된 라이브 비디오
    Captain of the Ship」 발표
    10월 4일, 싱글 「友よ」 발표
    11월 16일, 「LIVE ‘95 いつかの少年」 스타트(전국 9개소)
    12월 26일, 동경돔 콘서트
    후지 TV 「HEY! HEY! HEY!」에 첫 출연. 복귀 후 처음으로 TV 출연

    1996년
    1월 1일, 앨범 「家族」 발표
    1월 15일, TV 프로그램 「Hey! Hey! Hey!」에 특별 게스트로 급히 출연
    4월 30일, 싱글 「傷まみれの靑春」 발표
    5월 25일, 「TSUYOSHI NAGABUCHI LIVE '96 가족」 스타트(전국 10개소, 14회 공연)
    ※ 동경 돔 공연에서 ‘유우지'를 부르면서 무대에서 관중석으로 뛰어들었고, 관객들의 흥분으로

       쯔요시의 옷이 다 찢기는 사고가 발생. 하지만 공연은 무사히 종료.
    6월 5일, 라이브 비디오 「LIVE いつかの少年」 발표
    10월 25일, 라이브 앨범 「 LIVE COMPLETE '95~'96」 발표
    5억 엔의 대저택 구입(200평)

    1997년
    1월 24월, 드라마 「英二ふたたび」 방송(후지TV)
    2월 27월, 레코드 회사를 ‘포라이프(FOR LIFE) 레코드'로 이적
    6월 25월, 비디오 「英二ふたたび&ふたたび」 발표
    7월 2월, 싱글 「ひまわり」 발표
    7월 10월, 드라마 「보디가드」 시작(TV 아사히)
    9월 3월, 앨범 「ふざけんじゃねぇ」 발표
    11월 19월, 「LIVE '97~'98 ふざけんじゃねぇ」 스타트(전국 15개소, 23회 공연 출연)
    12월 10월, 베스트앨범 「SINGLES Vol 1·2·3」 발표

    1998년
    3월 21월, 「LIVE '97~'98 ふざけんじゃねぇ」 아마미(奄美大島)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림
    9월 23월, 싱글 「指切りげんまん」 발표
    9월 30월, 라이브 비디오 「'97~'98 ひまわり」 발표
    10월 2일 ~ 6일, 일동화랑에서 처음으로 시화전 ‘나의 태양' 개최
    ※ 11월 한신대지진으로 부모잃은 아이들을 위해 개인전 수익금 중 2,000만엔을 고베시에 쾌척
    10월 14월, 앨범
    「SAMURAI」 발표
    11월 25월, 「TSUYOSHI NAGABUCHI LIVE '98 SAMURAI」 스타트(전국 6개소 9회 공연)
    11월 26월, 싱글 「猿一匹- 唄えば侍」 발표
    12월 23월, 「TSUYOSHI NAGABUCHI LIVE '98, SAMURAI」 아마미(奄美大島)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림

    1999년
    5월 1월, 映畵「英二」(配給:東映)에 주연, 개봉
    5월 3월, 「TSUYOSHI NAGABUCHI LIVE '99 SAMURAI」 추가 공연을 개시했지만 건강악화로 전     공연 중지
    11월 21월, 에이지(「英二」) 비디오 발매
    12월 22월, 어쿠스틱 기타 앨범 ‘俺の太陽' 발매
    12월, 가고시마시립나카군(中郡) 초등학교(모교) 창립 120주년 기념일에 수채화와 포스터

      (자필사인) 증정.
    싱글 ‘淚のセレナ-デ' 발표

    2000년
    5월 10월, 「TSUYOSHI NAGABUCHI LIVE onLY 2×2 unplugged」스타트(전국 2개소 4공연)
    ※ 오사카성 홀과 일본 무도관 공연
    7월 26월, 「TSUYOSHI NAGABUCHI LIVE onLY 2×2 unplugged」 비디오 발매
    8월 12일,
    쯔요시의 어머니 마스코씨 향년 72세에 급성 심부전으로 타계
    11월 2일~6일, 2번째로 일동화랑에서 시화전 ‘적귀(赤鬼)' 개최
    12월 21일·12월 24일, 山野樂器 본점(銀座)에서 ‘ DAYS' 개최

    2001년
    6월 27일, 앨범
    ‘空 / SORA' 발표
    6월 17일, 동경 시부야 ‘TOKYO FM' 스튜디오에서 공개 생방송에 출연. 팬 1만 명이 쇄도
    10월 3일, 「TSUYOSHI NAGABUCHI LIVE 2001~2002 ‘空 / SORA'」 스타트
    11월 25일, 국제 포럼홀 둘째날 공연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기요하라' 선수가 특별 게스트로 등장
    새로운 매니저 ‘大野隆' 취임

    2002년
    2월 9월, 「TSUYOSHI NAGABUCHI LIVE 2001~2002 ‘空/SORA'」
    마지막 투어인 일본 무도관 공연에 한국 팬 200명을 초대 ※ 한국 팬클럽 회원들도 초대 받아 감격적인 콘서트 관람
    5월 9월, 「TSUYOSHI NAGABUCHI LIVE 2001~2002 ‘空/SORA'」 비디오 및 싱글「靜かなるアフ    ガン」 발표
    ※ 싱글은 보수 매스컴이 용납하지 않아 TV에서 방영이 되지 못함
    5월 22일, 자선 CD 「翼をください」를 다수의 아티스트와 노래해서 릴리스(쯔요시가 단장을 맡음)
    ※ CD 발매 취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에게 축구공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였음
    6월 22일, 「FUN」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노래 「靜かなるアフガン」을 부름
    6월 26월, 베스트 앨범(25주년 기념 앨범) 「 BEST ‘風'」, 「 BEST ‘空'」발표
    9월 7월, 데뷔 25주년 기념 환상의 콘서트 개최
    ※ 3만 2천 여 명의 관객과 함께 5시간 동안 자신의 생일 파티와 함께 환상의 라이브를 개최했으며,        2004년 가고시마에서의 올나이트 콘서트 개최를 약속함

    2003년
    4월 2월, 「 9.7 in 橫浜 스타디움 LIVE 2002」 DVD 발매
    ※ 이 DVD에 한국 팬클럽의 콘서트 성원 모습이 플래카드와 함께 생생하게 수록
    5월 1월, 싱글 「しあわせになろうよ」 릴리스
    5월 14일, 앨범 「Keep on Fighting」 릴리스
    7월 ~ 8월, 「Keep on Fighting」 야외 라이브 개최(4개소)
    9월 ~ 12월, 전국 약 30개소에서 「Keep on Fighting」 홀 투어 콘서트 개최

    2004년

    대망의 ‘사쿠라지마 올나이트 콘서트' 개최의 해
    3월 2일, 모교인 가고시마현립남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비밀 라이브 개최
    3월 23일~4월11일까지(17일간) 가고시마 역사자료센터 여명관에서 詩展「情熱」개최
    4월 28일, 트리뷰트 앨범「Hey ANIKI !」 발매
    5월 12일, 긴급 싱글「しあわせになろうよ'04/&All Cast feat.ZEEBRA」 발매
    7월/26일·27일 양일간, 『島オルナイトコンサト前夜祭 in Zepp』 개최 긴급 결정


 

 

 

 

 

                          

건배의 역사

 

모임이 있으면 술잔이 오가고 술잔을 들게 되면 자연스레 건배 제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언제부터 건배제의가 행해졌을까? 

 

 

친구의 건강을 위해서 건배하는 제스처는 오래전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애당초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즉, [당신에게 권하고 있는 이 술에는 독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안심하십시오!]라는 의미였던 것이었다.

 

 

정적이나 라이벌을 없애기 위해 또는 이혼하지 않고 배우자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술에 독을 넣는 것은 특히 그리스에서 널리 행해졌다. 때문에 술병에서 맨 처음 따른 첫 잔은 주인이 먼저 마셔서 안전함을 증명하고 난 다음에, 손님이 나중에 마셨다. 이순서는 이윽고 우정을 확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제스처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18세기 초에 와서 건배의 관습에 변화가 생겼다. 이때부터 건배 제스처는 주인이 초대한 친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리한 아름다운 여성을 향해서 하게 되었다. 그 후로 건배 없는 만찬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따라서 만찬에 온 손님을 모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향해 건배를 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와같이 지금까지 알려진 건배의 제의의 기원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첫째, 덴마크가 영국의 여러 섬들을 점령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정복된 섬사람들은 덴마크 군인들의 허락 없이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덴마크인들이 술잔을 높이 들고 '건강을 위하여'하고 건배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

 

둘째, 영국의 음주풍습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영어로 건배를 토스트(toast)라고 하는데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에서 토스트 빵을 벌꿀 술잔에 넣어서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여흥이 익어갈 무렵이면 재미있는 게임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토스트'하고 도전을 하면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 토스트가 미끄러져 따라 내려오도록 잔을 기울려

술을 마셔야 했다는 것이다.

 

 

셋째, 찰스 2세 치하에 영국의 바시스 시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어느 미인이 온천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그 때 한 사람이 욕탕에서 물을 한 잔 떠서 마시며 그 미인의 건강을 빌었다.

옆에 있던 다른 한 사람은 반쯤 술에 취하여 욕탕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말하고는

'그 술은 좋아하지 않으나 토스트가 갖고 싶다'고했다. 토스트란 바로 그 미인을 두고 한 말이다.

 

 

넷째, 기원전 3세기 로마시대에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여러 설 중 많은 사람, 많은 나라에서 인정받는 설이다. 서양의 만찬에서는 대개 와인을 만찬주로 삼아 건배를 하는데,

이것은 같은 병에 담긴 술을 나눠 마심으로써 독이 없음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풍속이다.

이 건배 풍속은 ‘믿음’을 강조하는 만큼 ‘진실’을 상징하였다.

 

 

예부터 서양인들은 포도주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며, 특히 고대 로마인들은 습관적으로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데 이런 로마인의 와인 기호를 이용하여 로마인에게 타격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것이 건배 풍속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즉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군이 마취제 넣은 포도주를 로마 병사에게 먹여 전세를 역전시켰던 것이다.

그 후 서양인들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한 병 술을 나누어 따라 독주(毒酒)가 아님을 확인하였고,

이것이 건배하는 습속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연회 석상에서나, 술좌석에서 서로 술잔을 가볍게 부딪히면서 축복하며 술을 마시는 건배 제의시 사용하는 구호에 있어서,

옛날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는 식사 중에 ‘신을 위해’, 공식 연회 석상에서는 ‘동석자와 죽은 사람을 위해’ 건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건배를 제안하는 말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건배(乾杯)’라는 단어는 잔(杯)을 깨끗이 비운다(乾)는 중국 풍습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나라 때 식사가 끝난 후 자기의 순서가 돌아올 때 잔을 높이 들어 깨끗이 비워 마셨으며,

이때 술은 항상 체온 정도로 미지근히 데워 마셨다. 송나라 때는 연회석상에서 요리가 운반될 때마다 조그만 잔으로 술을 마셨다.

 

 

 

 

서양에서는 건배할 때 ‘토스트 투-(Toast to-)’라고 외친다. ‘토스트’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로마인들이 불에 탄 토스트 조각을 우연히 술잔에다 떨어트렸는데,

이것이 술의 신맛을 감소시키자 그대로 습관이 되었다는 설이다. 영어의 ‘toast’는 ‘불에 탄’, ‘구운’이라는

뜻의 라틴어 ‘토스쿠스(tostus)에서 나왔음이 그 증거라 한다.

 

 

둘째, 17세기 후반 찰스 2세 때 어느 약수터에 한 여인이 있었는데 하도 아름다워 한 남자가 그녀를 위해

약수를 떠서 건배를 했는데, 이를 보고 있던 한 주정꾼이 자기는 술은 필요 없기 때문에 술 속에 있는 toast(술 속에 신맛을 없애고 향기를 주기 위해 toast 한 조각을 넣어서 마시는 습관)를 먹겠다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후 이 말은 술 대신에 여자를 갖겠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것을 계기로 여자를 지금도 toast라고 하며, 미인의 건강을 위해 건배하는 것을 토우스트라고 한다.

 

 

 

 

유럽지역의 경우 여러 가지로 갈라져 나간 “00를 위하여!”가 주종이지만, 중국과 일본 등 동양에서는 잔을 비우자는 뜻의 ‘건배(乾杯)’를 많이 쓴다. 우리나라는 근세에 이르러 이 두 가지 유형을 함께 수입해 섞어 쓰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영국에서는 ‘치어스’, 일본에서는 ‘간파이’, 독일, 네덜랜드에서는 ‘프로스트’, 프랑스에서는 ‘아보트르상태’, 중국에서는 ‘칸뻬이’, 캐나다에서는 ‘토스트’, 스페인에서는 ‘살루드’라는 말로 흥을 돋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나 즈다로비에’라는 말로 건배를 제안한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느냐도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서양에서는 건배했을 때 잔에 있는 술을 약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동양에서는 잔을 비우는 것이 예절로 통한다. 중국이나 홍콩에서는 건배할 때 단번에 잔을 비우고 잔을 뒤집어 식탁위에 세운다.

일본에서도 ‘간파이(건바이)’를 외치면 잔을 비워주는 게 예의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에 비해 러시아의 건배 풍경은 독특하다. 돌아가며 참석자의 건강이나 우정을 비는 ‘나 즈다로비에(건강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한마디씩 한 뒤 잔을 쭉 들이킨다. 그리고는 손님이 취할 때까지 이렇게 계속 마신다.  

 

 

건배에 대한 에티켓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건배는 잔을 비운다는 중국의 풍습에서 유래된것,

그러나 건배시 잔을 모두 비우는 지 여부와 건배제의는 나라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비즈니스에서는 유효 적절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건배제의가 제창자의 인격. 지적 수준, 나아가 그 만찬의 성격과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줄 뿐만 아니라 나머지 행사의 예고편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건배는 아주 간단한 행사조차도 영원히 기억되는 행사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건배의 중요성을 잘 알고

건배관정을 행사 속에 제대로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건배할 것인가? 먼저 외국인과 함께한 자리라면 "단숨에 쭈욱 들이킨다"는 뜻의 원샷은 하지 말아야 한다.

분위기를 위해 굳이 잔을 비우라고 권하고 싶을 경우 간단히 chug(처억), 또는 bottoms up(잔을 비웁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건배시 잔을 들 때는 팔을 쭉 뻗어 머리 위까지 올리지 말고 자신의 눈높이 정도까지만 올린다.

또한,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말고, 있는 자리에서 참여자들과 눈을 부드럽게 맞추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건배제의를 제창할 때, 자신도 스스로 잔을 들고 외친다면 자화자찬하는 것이 되므로

같이 일어나지 말고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감사의 표시를 하는게 더 중요하다.

 

 

절대로 파티 주최자, 즉 호스트가 아닌 이상 먼저 건배제의를 하지 말라.

특히, 당신이 초대받았다면 호스트의 역할을 오버하지마라, 그것은 주최자의 몫이다.

 

 

반면 술을 안 마신다는 이유로 건배조차 참가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는 아주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건배는 반드시 삼페인. 와인만으로 건배하는 것이 아니므로 옆에 있는 빈 잔, 물잔, 탄산음료 잔이라도 들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표하라. 빈 잔이라도 들어라, 조금의 협력하고자하는 마음이 없다면 절대 그런 행사에 가지마라.

당신의 옹졸함이 드러날 뿐이다.

 

 

자신들만의 공간이 아닌 대중 레스토랑, 특히 고급 레스토랑에서 건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선 다른 손님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청중을 집중시키기 위해 전에 소리를 내거나 요란하게 잔을 부딪치는 것 역시 예의에 어긋난다.  

 

 

건배 제의 방법 및 사용하는 말

 

 

친목모임이나 단체 회식을 하는 즐거운 자리에서 당신에게 돌아온 건배제의 요청에 당황해본 적은 없는가?

사회활동이나 직장생활을 오래했던 사람들도 의외로 그러한 상황을 고역으로 생각하거나 매끄럽지 못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건배제의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누구도 가르쳐주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건배제의도 생활스피치의 중요한 부분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살아 움직이려면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65%는 분위기라는 통계도 있지 않은가?

 

 

경영자 입장에서 조직 내 친목 취미클럽을 활성화시키고 잦은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이유도 모두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즐겁고 의미 있는 회식자리에서의 "쨍!"하고 부딪치며 분위기를 돋구어줄 멋진 구호선창,

어떻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할까? 먼저, 건배제의의 기본 순서를 점검하자.

 

 

 

 

첫째, 참석한 모두에게 잔을 채우게 한다.

 

 

둘째, 건배제의 기회를 갖게 해준 사람(또는 사회자)에게 감사 인사말을 건넨다.

 

 

셋째, 당일 모임 취지와 관련한 멘트를 간단하게 한다.

 

 

넷째, 적절한 멘트를 만들어 건배구호를 선창한다.

 

 

다섯째, 다 마신 다음에는 모두에게 박수를 유도한다.

 

 

 

 

건배제의는 "위하여!"라는 말로 대표되듯이 기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모임 취지관련 멘트는 칭찬과 희망과 확신에 찬 말이 바람직하다할 것이다.

특히 건배 구호제창은 전체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순서인 만큼 내용에 따른 강약조절과 함께 구령하듯이

크고 힘차고 단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배제의는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건배제의를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서는 많은 박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당신이 책임자라면 무리가 없겠으나,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게 건배순서를 갖자고 제의하여 요청하거나 요청을 받아 선창하는 모양이 좀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건배제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어서서 하자.

왜냐하면 같은 말을 해도 일어서서 하는 것과 앉아서 하는 것은 청중에게 주는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서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청중으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며 스피치를 성공으로 이끄는 자기표현 테크닉인 것이다.

회의나 미팅에서 발언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서서함으로써 톤이 당당해지고 그 자세에서 더욱 박력을 느낄 수가 있다. 또한 좌중을 완벽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 자리의 상황이나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함으로써 정확한 발언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설득력 또한 훨씬 커진다.

특히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일어서서 한다.

서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건배 제의…

 

 

◇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건배 제의

 

 

1.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즐기자(Seize the day)는 뜻의 라틴어로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자’는 삶의 자세를 강조.

■ 카르페” “디엠”

 

 

2. 진ㆍ달ㆍ래 -진짜로 달래면 줄래

■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란 뜻으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강조‘할 때 쓸 수 있는 건배사.

■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진달래”

 

 

3. 코이노니아(Koinonia)

■ ‘가진 것을 서로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관계’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돈독한

사이란 의미로 사용.

■ "코이“ “노니아”

 

 

4. 구구ㆍ팔팔(9988) 이삼사(234)

■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고 3일째 죽는다는 뜻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건강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살 아가자는 의미로 사용.

■ “구구팔팔“ “이삼사“

 

 

5. 메아 쿨파(Mea Culpa)

■ '내 탓이오‘ 란 뜻의 라틴어로, 어떤 결과에 대해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자는 의미로 사용.

■ "메아 쿨파" "메아 쿨파"

 

 

6. 당ㆍ나ㆍ귀

■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란 뜻으로 관계의 소중함을 강조

■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당나귀”

 

 

7. 나이야 가라!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처럼 나이가 주는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자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건배사.

■ “나이야” “가라”

 

 

8. 마음 도둑

■ ‘고객의 마음을 훔치자’는 의미로 쓰며, 고객이 갈망하는 욕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 유용한 건배사.

■ “마음을” “훔치자”

 

 

9. 나ㆍ가ㆍ자

■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란 뜻으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사용

■ “나가자” “나가자”

 

 

10. 개ㆍ나ㆍ리

■ ‘계(개)급장 떼고, 나이는 잊고, Relax &Refresh 하자’는 뜻으로 권위와 위엄을 벗고 위아래가 모두 하나가 되어 편하게 즐기며 기분을 전환하자는 ‘회식용’ 건배사.

■ “개나리” “개나리”

 

 

11. 기타

■ 개나발 :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 사우나 : 사랑과 우정을 나눔세

■ 초가집 : 초지일관/가자/집으로(2차없음)

■ 단무지 : 단순하고 무식해도 무지 행복하게 살자

■ 지화자 : 지금부터 화끈한 자리를 위하여.

■ 니나노 : 니랑 나랑 노래하고 춤추자

■ 세우자 : 세상도 세우고 우리 가정 경제도 세우고 자기 거시기도 오래오래 세우자

■ 거시기 : 거절말아 시방부터 기가 막히게 보여주지.

■ 변사또 : 변치마라 사내놈아 또 만날 때까지.

■ 무시로 : 무조건 시방부터 로맨틱한 사랑을 위하여

 

◇ “핑거 스피치중에서 - ” 발췌한 건배제의

 

 

1. 저녁 모임에서

시인 안도현님의 '너에게 묻는다'란 짧은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 번이라도 뜨겁게 놀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만큼은 정말 뜨겁고, 정말 화끈한 밤을 보내 봅시다.

자, 뜨겁고 화끈한 밤을 위하여 !!

 

 

2. 신입 사원 환영 모임에서

기업에는 비용으로 평가되는 직원이 있고,

자산으로 평가되는 직원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 회사의 귀중한 자산이 되는

유능한 인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 우리 모두를 위하여 !

 

 

3. 친목 단체 모임에서

여러분, 우선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술잔에 따른 것은 술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따뜻한 정과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함께 정을 나누는 따뜻한 만남을 위하여 !!

 

 

◇ - WOWSPEECH 참고-

 

 

1. 따뜻한 만남을 기원 할 때

잔에 담긴 술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따뜻한 정과 마음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따뜻한 만남을 위하여 !

 

 

2. 소중한 만남을 강조할 때

우리가 함께하는 이 자리는

돈을 주고 빌릴 수 있지만

우리가 나누는 따뜻한 정과 마음은 돈을 주고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위하여 !

 

 

3.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시계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소중한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위하여 !

 

 

4.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보약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우리의 건강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

 

 

5. 가정의 화목을 강조할 때

우리가 함께하는 이 집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화목한 가정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

 

 

6. 식욕을 돋울 때

우리 앞에 놓인 음식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우리의 식욕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왕성한 식욕을 위하여 !

 

 

7. 쾌적한 수면을 기원 할 때

침대는 돈을 주고 살 수 잇지만,

쾌적한 수면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쾌적한 숙면을 위하여 !

 

 

8. 밝은 표정을 강조할 때

잘 생기고 예쁜 얼굴은

돈을 주고 만들 수 있지만

좋은 인상은 돈을 주고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밝은 표정을 위하여 !

- 퍼온글 입니다-

 

 

 

 

 

 

 

 

 

 

 

 


'Music(팝)'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vin' Next Door to Alice / Smokie   (0) 2009.08.19
이종환의 올드팝 24선   (0) 2009.07.30
Julio Iglesias 모음집  (0) 2009.07.09
The Saddest Thing / Melanie Safka   (0) 2009.06.17
When I Dream / Carol Kidd  (0) 2009.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