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10분의 1이 살해된 인류 최대의 참극, 르완다 대학살을 파헤친다!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르완다 대학살『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영화 <호텔 르완다>의 원작이 된 이 책은 르완다 대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참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리고, 서구 제국이 망가뜨린 오늘날 아프리카의 비극적 현실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다년간의 현재 취재를 바탕으로, 100일 만에 80만~100만 명이 희생된 이 참혹한 사건의 현장을 취재하고,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일어난 제노사이드를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또한 사건이 일어난 과정과 전후의 상황 등을 르완다 지도층, 투치족 생존자 등 현장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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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내전을 조명한 최고의 책으로 평가 받고 있는 이 책은 독자들이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르완다 대학살의 구체적인 전말을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 저자의 현지 취재를 통해 르완다의 역사를 비롯한 아프리카 전반의 식민사를 돌아보고, 무책임했던 유엔, 서구열강, 언론과 사건에 침묵했던 전 세계의 태도를 포착해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목차
제1부 어둠의 심연 한가운데서
1. 참상의 현장을 가다
2. 혼돈의 시작
3. 살인을 주도한 목사
4. 후투족과 투치족
5. 학살 이전, 오데트의 증언
6. 프랑스를 등에 업은 독재자, 하비아리마나
7. 증오를 부추기는 언론
8. 서구 열강의 이중성
9. 시작된 대학살
10. 르완다판 ‘쉰들러 리스트’, <호텔 르완다>
11. 무력한 ‘푸른 헬멧’, 유엔과 클린턴 정부의 위선
제2부 빛을 향해 가다
12. 끝나지 않은 이야기
13. 키베호 난민촌의 비극
14. 새로운 출발
15.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16. 화해의 방식
17. 거짓과 진실
18. 계속되는 학살
19. 살인자들의 귀환
20. “네 이웃을 죽여라”
21. 다시 일어서는 르완다
22. 남겨진 희망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필립 고레비치 지음/강미경 옮김/갈라파고스/1만6500원서구 제국이 망가뜨린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현실을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저자는 벨기에와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위선적인 태도와, 실리 없는 싸움에 끼어들기 거부하는 '학살 방조자' 유엔의 실체를 신랄히 고발한다.1994년 4월 중앙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정부를 등에 업은 다수족인 후투족이 소수민족 투치족 100만명을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분당 7명, 하루 만명꼴로 투치족은 후투족의 칼날에 추풍낙엽처럼 학살당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였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사건 직후인 1995년부터 수차례 르완다를 취재해 직접 눈과 귀로 접한 처참한 사건의 실체를 가감 없이 전한다.이 사건은 유엔이 홀로코스트 이후 처음 제노사이드로 규정한 엄청난 비극이다. 희생자의 수나 희생된 속도 면에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나,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코소보 사태 등과 비교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는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100일 동안 르완다 인구의 10%가 살해됐다. 국제사회는 대참극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했다. 유엔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 역할을 망각했다. 르완다와 주변국에 무기를 판매한 서구 각국은 이 사건에 가장 큰 가해자이면서 책임자들이다. 저자는 "이 사건이 유럽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모두가 침묵했을까"라고 반문한다.비극의 기원은 19세기말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기였다. 르완다를 식민지로 삼은 독일과 벨기에는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대립을 식민 통치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전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두 부족은 인종 분열 정책 아래 서로 반목하기에 이른다. 대학살 직전 부족 간 갈등을 부추긴 독재자 하비아리마나는 군사 원조를 제공한 프랑스 등 서구의 지원을 기반으로 힘을 키웠다. 푸른 헬멧을 쓴 유엔 르완다지원단(UNAMIR)은 학살자에게 총을 겨누는 대신 시체를 뜯어먹는 개들을 쏘는 데 더 몰두했다.
르완다 대학살을 영화로 만든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으로, 구호 요원들이어린이들을 구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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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필립 고레비치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1994년 4월 중앙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다수족인 후투족이 정부 지시에 따라 소수족 투치족 100만 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분당 7명, 하루 1만 명의 투치족이 후투족의 마체테(날이 넓은 칼) 날 끝에 목숨을 잃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보다 3배나 빠른 속도였다.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사건 직후인 1995년부터 수 차례 르완다를 취재하면서 보고 들은 처참한 사건의 실체를 가감 없이 전한다. 살해 당시 모습 그대로 시체들이 보존돼 있는 교회당의 풍경이나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투치족 생존자, 학살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은 후투족의 증언 등은 대학살의 비극성을 생생하게 드러낸다.저자는 대학살의 전말을 재구성하면서 이러한 비극을 방조하고 심지어 조장한 서구 열강의 탐욕을 세밀하게 비춘다. 비극의 기원은 19세기말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르완다를 식민지로 삼은 독일과 벨기에는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대립을 식민 통치의 발판으로 삼았고 그전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두 부족은 인종 분열 정책 아래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대학살 직전 부족 갈등을 부추긴 독재자 하비아리마나는 신식민주의 정책에 따라 군사 원조를 제공한 프랑스 등 서구의 지원을 기반으로 힘을 키웠다고 저자는 진술한다. 게다가 유엔은 내전의 위험이 경고된 1994년초나 학살이 절정에 이른 그 해 6월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기만 했다고 고발한다.저자는 르완다 대학살이라는 현대사 최대의 잔혹사를 통해 서구 열강이 무너뜨린 아프리카의 비극적 현실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1만 6,500원.정민정기자 jminj@sed.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출간(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94년 4월 중앙아프리카의 작고 아름다운 나라 르완다에서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다수족인 후투족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소수족 투치족 100만 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분당 7명, 하루 만 명의 투치족이 후투족의 마체테(날이 넓은 칼) 날끝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였다.미국의 저널리스트 필립 고레비치가 쓴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갈라파고스 펴냄)는 르완다 대참극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대학살 4년 후인 1998년 미국에서 출간돼 전미 도서 비평가상을 받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도 오른 화제작이다.저자는 사건 직후인 1995년부터 수차례 르완다를 취재해 직접 눈과 귀로 접한 처참한 사건의 실체를 가감없이 전한다.살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시체들이 보존돼 있는 교회당의 풍경이나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투치족 생존자와 학살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은 후투족의 증언 등은 대학살의 비극성을 무엇보다 생생하게 드러낸다.르완다판 '쉰들러 리스트'라고 할 만한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의 구조 활동도 소개하는데 이 일화는 후에 영화 '호텔 르완다'로 제작되기도 했다.저자는 대학살의 전말을 재구성하면서 이러한 비극을 방조하고 심지어 조장한 서구 열강의 탐욕에 비난의 초점을 맞춘다.비극의 기원은 19세기말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르완다를 식민지로 삼은 독일과 벨기에는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대립을 식민 통치의 발판으로 삼았고 그전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두 부족은 인종 분열 정책 아래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대학살 직전 부족 갈등을 부추긴 독재자 하비아리마나는 신식민주의 정책에 따라 군사 원조를 제공한 프랑스 등 서구의 지원을 기반으로 힘을 키웠다.또 유엔은 내전의 위험이 경고된 1994년 초나 학살이 절정에 이른 그해 6월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기만 했다.푸른 헬멧을 쓴 유엔 르완다지원단(UNAMIR)은 학살자에게 총을 겨누는 대신 시체를 뜯어먹는 개들을 쏘는 데 더 몰두했다."열강들의 정치, 군사, 경제적 관심도로 따지면 르완다나 화성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사실 전략상으로는 화성이 르완다보다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성과 달리 르완다에는 인간이 거주한다.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났다면 그 이유는 열강들이 그렇게 방치했기 때문이다."(187쪽)이 책이 출간된 1998년까지도 르완다에선 투치족에 대한 테러 행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학살자에 대한 재판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르완다의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저자가 책 말미에 전한 후투족 여중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르완다의 내일에 한줄기 빛을 비추고 있다."민병대는 자고 있던 학생들을 깨워 후투족은 후투족끼리, 투치족은 투치족끼리 모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거부했다. 두 학교 여학생들은 모두 자신들은 르완다인일 뿐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무차별하게 매질과 총격을 당했다."(425쪽)강미경 옮김. 432쪽. 1만6천500원.mihye@yna.co.kr(끝)
- ■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ㆍ퓰리처상 최종 후보작ㆍ전미 도서 비평가상 수상작
100일 동안 100만 명, 인구의 10분의 1이 살해된 인류 최대의 참극, 르완다 대학살
1994년 4월, 대체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994년 4월 아프리카의 르완다 정부는 다수족인 후투족에게 소수족인 투치족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광기에 휩싸인 후투족은 평생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로 지내온 투치족을 상대로 잔혹한 ‘인종 청소’를 자행하고, 이후 석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분당 7명, 시간당 400명, 하루에 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속도로 르완다 인구의 10퍼센트, 약 100만 명에 달하는 투치족을 살해했다. 이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해서도 그 속도가 무려 세 배나 빠른 충격적인 수치다. 아프리카 중앙의 이 작은 나라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책은 르완다 대학살이라는 현대사 최대의 잔혹극을 통해 서구 제국이 망가뜨린 오늘날 아프리카의 비극적 현실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다년간의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르완다의 역사를 비롯한 아프리카 전반의 식민사를 샅샅이 돌아보며, 벨기에와 독일,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위선적인 태도, 실리 없는 싸움에 끼어들기 거부하는 ‘학살 방조자’ 유엔의 실체를 신랄히 고발한다. 나아가 모든 것을 잃고 ‘삶과 죽음’의 아비규환에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르완다 대학살』은 1994년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이듬해부터 3년간 여러 차례 저자가 이 비극적 참사의 현장을 취재하고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인터뷰한 이야기를 통해 당시 일어난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다시 불러온다. 저자는 100일 만에 80만~100만 명이 희생된, 상상하기 힘든 이 사건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세심히 귀 기울인다. 또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후의 상황과 진행 과정 등을 르완다 지도층, 학살 가담자, 투치족 생존자 등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시체를 거두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교회당,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투치족 생존자 오데트, 투치족 학살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은 후투족, 르완다의 쉰들러로 불리는 폴 루세사바기나의 일화 그리고 투치족 반군 르완다 애국전선의 진격과 후투족 학살 주동자들이 숨어든 난민촌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 이들이 다시 르완다로 돌아와 희생자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후 상황들까지의 이야기에서 언론 등 우리가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르완다 대학살의 구체적인 전말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무책임했던 유엔, 서구 열강, 언론과 사건에 침묵했던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의 태도를 포착해 이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20세기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의 식민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이 책이 묘사하는 참혹한 학살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먼저 이 책의「제1부 어둠의 심연 한가운데서」에서는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배경과 르완다의 역사적 상황에서부터 1994년 4월~6월 동안 학살이 최절정에 이르는 시점을 중심으로 대학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전한다. 그 과정에서 제노사이드를 대하는 서구 사회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학살을 방관한 유엔의 책임을 묻는 등 르포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준다. 다음「제2부 빛을 향해 가다」에서는 과거 후투족의 박해를 피해 달아난 투치족 난민이 결성한 반군 조직인 르완다 애국전선의 활약을 통해 학살이 종결되는 과정과 이후 난민촌에서 벌어지는 비극, 열강과 그들이 이끄는 국제 인도주의 단체가 보여준 무관심과 편견, 비겁함 때문에 발생하는 부조리,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와 기억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르완다의 모습을 전한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처럼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사회다. 차례로 르완다를 식민지로 삼은 독일과 벨기에 지배자들은 통치를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투치족과 후투족을 분열시켜 갈등하게 하는 정책을 폈다. 독립 후에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1994년 후투족 대통령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대학살 사건은 이런 경험의 연장선에서 일어났다. 학살 당시 프랑스 미테랑 정부는 후투족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군대를 파견하는 등 사실상 학살 행위에 직접 가담했지만 이후 공식적으로 이 사건의 책임에 대해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르완다에서 자원 등 취할 것이 없었던 미국의 클린턴 정부 역시 학살을 제지하는 데 미온적으로 행동했고, 유엔에 압력을 행사하면서까지 국제 사회가 르완다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후 클린턴 정부는 이런 태도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그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20세기 서구 식민 통치의 모순과 부조리에서 비롯된 이 참극을 통해 우리는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에 뿌려놓은 비극의 씨앗이 어떤 괴물로 현실화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사건은 유엔이 홀로코스트 이후 처음으로 제노사이드로 규정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희생자의 수나 희생된 속도 면에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코소보 사태 등 그 어떤 학살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이었지만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는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100일 동안 르완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살해된, 충격적인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국제 사회, 언론, 유엔 그리고 열강들의 책임이 크다. 사건 당시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한 국제 사회,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 역할을 망각한 유엔 그리고 자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방관하거나 심지어 무기를 공급한 열강이 이 사건에 가장 큰 가해자이면서 책임자들이다. 이 사건이 유럽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모두가 침묵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우리의 바람과 다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보고 싶은 욕망’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저자가 르완다를 찾은 동기 역시 이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서 ‘얼마나 처참한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제대로 보았을 때 우리가 다시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본다는 것은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알게 된 이상 우리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안다는 것은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함을 뜻한다. 우리는 그 끔찍한 대학살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게 되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참혹한 학살을 자행한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부과한다. 인류라는 범주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사건을 기억해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책임 말이다.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그리고 ‘인간 사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라는 문제의식을 포함하는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즉시《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 선정되었으며 전미 도서 비평가상,《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서상, 논픽션 부문 펜 마르타 알브랜드상, 뉴욕공립도서관 헬렌 번스타인 도서상, 외국 취재 부문 조지 포크상, 외신 기자 클럽 코르넬리우스 라이언 최고 도서상을 받는 등 비평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았다. 출간 후 큰 화제가 되면서 영화 <호텔 르완다>의 원작이 되었고, 현재까지 르완다 내전을 조명한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내용]
제1부 어둠의 심연 한가운데서
1. 참상의 현장을 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참혹한 학살 현장과 생존자들의 믿기지 않는 증언들을 만나게 된다. 저자는 1995년, 1년 전 일어난 학살 당시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르완다의 어느 교회당에서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장면과 마주한다. 저자는 르완다 참상의 현장에 직접 찾아간 이유를 ‘그 사태를 무시하고 살아갈 경우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안에 속한 자신의 위치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과 저자가 전하는 증언을 통해 범죄 행위를 정확히 기억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혼돈의 시작
1994년 4월 학살은 갑자기 시작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공격이 있었고, 본격적인 학살이 시작되기 전 후투족들의 공공연한 회합 등으로 불길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인구의 10퍼센트가 사리지는, 그렇게 참혹한 학살이 시작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가옥이 불타고 총성과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자 사람들은 병원이나 교회 같은 안전한 곳을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살인은 교회에서 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이 걸치고 있는 옷, 내면을 가린 얼굴이 얼마나 쉽게 탄로 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3. 살인을 주도한 목사
목사 은타키루티마나는 교회에 모인 투치족들에 대한 학살을 주도한 후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 텍사스로 도주했다. 1996년 9월, FBI가 목사를 체포하기 전 저자가 그를 찾아 르완다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에 대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목사의 자녀들은 물론 목사 자신도 투치족 학살에 대한 혐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르완다 대학살에서 교회 목사, 시장, 지역의 명망가 등 사회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와 그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학살을 주도하고 추동하는 데 앞장섰는데, 이것은 르완다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든지 적절한 견제나 비판 없이 권위를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해준다.
4. 후투족과 투치족
농사를 짓는 후투족과 가축을 기르는 투치족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영역에 종사하며 살아왔지만 그들이 심각한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인종학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부족들 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때 차례로 르완다를 식민지로 삼은 독일과 벨기에는 소수족 투치족을 지배 계급으로 인정하고 두 부족 간의 대립을 식민 통치의 발판으로 삼았다. 후투족에 대한 차별로 인한 투치족과 후투족의 갈등은 크고 작은 폭력 사태로 계속되었고, 1962년 르완다 독립을 계기로 후투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그 관계가 역전된다. 20세기 초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에 뿌린 갈등의 씨앗은 100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뒤 인종 청소라는 무서운 괴물로 르완다에서 현실화되었다.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에서 벌인 각축전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을 몰고 올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5. 학살 이전, 오데트의 증언
저자는 르완다를 기록하기 위해 투치족 생존자와 후투족 가해자와 국제 구호 단체 직원 등 학살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인상을 끄는 사람은 르완다의 쉰들러로 불리는 폴 루세사바기나, 투치족 반군 단체인 르완다 애국전선의 지도자 폴 카가메 그리고 이 장에서 소개되는 투치족 생존자 오데트이다. 그녀는 격랑의 르완다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수많은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이야기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고통에 겨워하며 들려준다.
6. 프랑스를 등에 업은 독재자, 하비아리마나
하비아리마나 정권은 아프리카에 이해관계를 둔 프랑스와 벨기에 등 서구의 지원을 기반으로 세워진 정권이다. 이 정권 뒤에서 권력을 지탱하는 기반이자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정권의 실세 노릇을 하는 대통령의 측근들은 서구의 지원 덕분에 누리게 된 부를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썼고, 이권을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등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여기서 우리는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장기 집권하는 독재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서구의 밀월 관계, 식민 통치 이후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부조리한 관계의 이면을 확인할 수 있다.
7. 증오를 부추기는 언론
르완다 지식인들이 즐겨 읽는《캉구카》(깨어나라!)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하비아라마나 정권의 은밀한 지원 아래 창간된《캉구라》(깨우라)는 후투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최전선에서 투치족에 대한 성전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앞장선다. 르완다 대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라디오 방송 등 언론이 학살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권의 시녀가 되어 학살의 조장자, 주동자가 된 르완다의 현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을 알려준다.
8. 서구 열강의 이중성
1994년 초부터 르완다에서는 위험을 경고하는 언론 기사들이 실렸고 후투족 젊은이로 구성된 민병대들이 활동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상황을 읽은 유엔 사령관 달레르는 유엔에 르완다의 상황을 전하며 ‘긴급 처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유엔은 이 사건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고 르완다 대학살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의 수호자인양 하지만 실제로는 실리가 없는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 유엔, 학살이 정절에 이르렀을 때도 방관한 서구 열강의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다.
9. 시작된 대학살
1994년 4월 6일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비행기 피격으로 사망하자마자 언론들은 암살의 책임을 르완다 애국전선과 UNAMIR(유엔 평화 유지군의 르완다 지원군)에 돌렸지만, 대통령 주변의 극단주의자들이 투치족을 학살하기 위한 구실로 꾸민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투치족에 대한 전면적인 숙청이 시작되었고 유엔군은 학살자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외국 정부들은 자국민을 서둘러 철수시키고 대사관 문을 닫아버렸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투치족 학살을 독려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살인 행위에 가담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주민 모두가 희생되었고, 의사가 환자를 죽였고, 선생이 학생을 죽였으며, 평생 함께 살아오던 이웃을 죽였다. 이 파멸의 현장에서 르완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사라져버렸다. 학살 현장을 직접 보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들은 저자의 생생한 묘사는 그 처참함으로 우리를 전율하게 할 것이며, 이 사건이 인류사에서 절대로 잊혀서는 안 되는 일임을 깨닫게 할 것이다.
10. 르완다판 ‘쉰들러 리스트’, <호텔 르완다>
국내에 개봉된 <호텔 르완다>는 이 책에 소개된 폴 루세바기나의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는 학살이 일어나던 당시 르완다의 최고급 호텔의 지배인으로 있었고 그 지위를 이용해 투치족, 후투족에 반대하다 위험에 처한 후투족의 생명을 구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당연한 행동이었으며, 다른 후투족들이 권위에 복종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폴이 자신의 자유 의지를 믿고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처참한 비극의 현장에도 인간성이라는 희망이 숨 쉴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11. 무력한 ‘푸른 헬멧’, 유엔과 클린턴 정부의 위선
푸른 헬멧의 유엔 지원군은 이 전쟁의 개입에 소극적이었다. 르완다 현지에서의 병력 요청에도 불구하고 유엔과 유엔에 강력한 힘을 미치는 미국의 소극적 태도로 유엔군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특히 유엔은 학살이 절정에 이르렀던 1994년 6월에도 이 사건을 ‘제노사이드의 가능성이 있는’이라고 표현하며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사이 르완다에 대한 우위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가 파견한 지원군은 학살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살 주동자들이 르완다 애국전선을 피해 도주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완다 애국전선이 후투 파워를 물리치고 르완다를 장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애를 강조하지만 그것을 지켜낼 수 없는 유엔의 무능과 필요할 때만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위선을 확인할 수 있다.
제2부 빛을 향해 가다
12.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 책이 출간된 1998년에도 제노사이드에 대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2011년 7월 현재에도 학살자들에 대한 재판이 완료되지 않았다(최근 기사로 유엔 산하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가 1994년 당시 르완다 대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전 가족여성부 장관인 폴린 니라마수후코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2011년 6월 25일 보도). 이것은 학살을 경험한 르완다인들에게도 그리고 그 사건을 방관한 우리에게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13. 키베호 난민촌의 비극
르완다 새 정부는 난민뿐만 아니라 학살 주동자들이 숨어 있는 키베호 난민촌의 폐쇄를 시도했지만, 국제 사회나 구호 단체들은 난민촌 폐쇄에 소극적이었고, 학살 주동자들의 방해나 공격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난민들 역시 난민촌을 떠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 정부는 국제 사회의 협조 없이 키베호 난민촌을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않은 비극으로 수천 명이 희생되었다. 난민들 서로 간의 공격, 이들에 대한 후투 파워의 공격 그리고 난민촌 전체에 대한 르완다 애국군(르완다 새 정부의 군대)의 총격으로 난민촌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당시 르완다는 사회 전체가 인간성 말살을 경험한 사회였고, 이 사건은 이러한 위협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4. 새로운 출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완다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었다. 거기에는 현재 르완다 대통령으로 있는 폴 카가메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우간다에 피란해 있던 투치족이었고 후에 르완다 애국전선을 훌륭하게 이끌어 르완다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 이 새로운 지도자는 르완다를 재건하기 위한 개혁 조치들을 취하면서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 힘썼다. 이 장과 다른 장들에서 묘사되는 카가메는 매우 매력 있는 지도자이다. 그가 아픔의 땅 르완다에 새로 세우려고 한 르완다의 방향은 적어도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었다.
15.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고 르완다가 정상의 궤적을 찾아가면서 1994년의 학살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후투족의 박해를 피해 주변 국가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던 투치족들이 돌아와 르완다 재건에 참여했다. 대학살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오히려 르완다 사회에 빠르게 적응한 반면 학살에서 살아남은 투치족들은 오히려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해 무기력했고, 사회에 통합되지 못했다. 게다가 후투족과 투치족이라는 구분 외에도 다양한 파벌과 각각의 출신 배경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대립은 사회의 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학살에 대한 기억의 고통과 자신만 살아남은 데서 오는 슬픔이었다.
16. 화해의 방식
르완다 정부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학살과 관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공정한 재판이란 불가능하며 정치적으로도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처벌은 필요했고 그래서 정부가 고안해낸 방식이 범죄 행위의 등급에 따라 공공 근로 또는 재교육을 부과하거나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보상하게 하는 등 공포와 분노가 아니라 참회를 통한 용서라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재건과 화해를 위한 최선의 방식이었지만 르완다 내의 여의치 않은 상황과 국제 사회의 비협조로 재건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가해자일 때 그래서 그들을 다 처벌하면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없을 때 그 해결 방법은 결국에는 화해밖에 없을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을 우리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17. 거짓과 진실
저자는 르완다인들이 그들끼리 있을 때와 외부인들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르완다인들이 정치에 능하다는 그의 평가와 연결된다. 즉 인종학의 영향을 받아 후투족과 투치족을 구분하는,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논리가 그들이 거짓과 진실을 위장하게 하고 심지어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준 문제였다는 것이다.
18. 계속되는 학살
르완다에서 학살은 종료되었지만 1996년 초 르완다 국경 근처인 자이르 키부 북쪽에서 투치족 100여 명이 학살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것은 이런 문제들이 르완다 내분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와 아프리카 독재자들이 맺고 있는 부조리한 관계, 서로를 비호하며 정권을 유지해가는 독재자들 그리고 이 문제를 방관하는 국제 사회 모두의 책임이라 것을 증명한다. 또한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의 자의적 기준과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독재자들이 맺은 암묵적인 카르텔이 아프리카의 문제를 얼마나 복잡하고 풀 수 없는 문제로 만드는지도 보여준다.
19. 살인자들의 귀환
르완다 국경 밖 자이르에서는 1996년 말까지도 투치족에 대한 크고 작은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르완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정상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투치족들은 물론 학살에 가담한 후투족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살인자와 살아남은 자와 돌아온 자 들이 한데 모여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 화해할 수 없는, 불편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살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을 지워내는 것이다. 사회 전체로는 학살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는 그 기억을 지워야 삶을 살아 낼 수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것이 르완다에 지워진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20. “네 이웃을 죽여라”
귀환자들의 무리에는 당연히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바리케이드 책임자로 학살에 가담한 기무루핫세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고백하고 용서받고자 했다. 반면 후투족에게 가족들을 잃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투치족들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었다. “네 아버지와 네 형제 일곱과 네 누이를 죽인 네 이웃을 죽여라”라는 말을 듣는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그들은 마체테를 들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어느 투치족의 말은 가해자 후투족과 생존자 투치족의 공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준다.
21. 다시 일어서는 르완다
르완다에서 여전히 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후투족에 대한 보복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국경 밖에서도 후투족들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르완다는 외부에 있는 후투족의 협박이나 국제 사회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학살 이후 르완다가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가는 데서도 국제 사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르완다는 끝까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이름인 것이다.
22. 남겨진 희망
저자가 르완다를 찾은 후반 무렵인 1998년 초까지도 테러 행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학살 가담자에 대한 처벌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의 말처럼 제노사이드가 르완다에 좌절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르완다의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이 르완다인이라고 밝힌 후투족 여학생의 용기를 기리며 글을 맺고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르완다 대학살 사건이 절대로 잊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시에 우리가 그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받은 상들]
★《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
★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
★ 전미 도서 비평가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서상
★ 논픽션 부문 펜 마르타 알브랜드상
★ 뉴욕공립도서관 헬렌 번스타인 도서상
★ 외국 취재 부문 조지 포크상
★ 외신 기자 클럽 코르넬리우스 라이언 최고 도서상
[이 책에 쏟아진 찬사]
필립 고레비치의 르완다 제노사이드 보고서처럼 흥미진진한 책이나 소설이나 논픽션은 본 적이 없다. 그는 우리 모두의 눈높이를 올려놓았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월 소잉카
이처럼 눈길을 끄는 책은 처음이다. 그의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20세기 말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라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조지프 콘래드의『어둠의 심연』과 겨룰 만한 악의 연대기이자 외국 취재기의 이정표!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르완다의 보통 사람들,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 귀 기울인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책!
《네이션》
신랄하지만 품위와 도덕성이 돋보이는 보고서!
《뉴요커》
고레비치는 가슴 찡한 감동과 정확한 사실은 물론 영혼의 상처까지 전달하는 독보적인 능력을 지녔다!
《뉴퍼블릭》
경이로운 연대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이 책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널리 읽혀져야 할 책!
《빌리지 보이스》
저널리즘 문학의 최고봉!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충격적이고 중요하며 명확하다. 인간적인 목소리를 지닌 책!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
이 책이야말로 도덕성을 갖춘 저널리즘의 가장 훌륭한 사례!
《타임》
탁월한 르포르타주. 기절할 만큼 훌륭한 책!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잊을 수 없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사회가, 인간이, 그리고 우리 자신이 다시는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 로널드 스틸
고레비치는 몇 안 되는 위대한 기자들의 뒤를 이어 아프리카의 킬링필드에서 취재해 온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지옥의 입구에서 ‘인간’의 깃발을, ‘상식’이라는 휘장을 들어 올리는 책!
- 로버트 스톤
제노사이드라는 무자비한 공포를 통렬하게 분석한 보고서. 한마디로 열강과 인도주의 단체의 무관심과 편견, 비겁함에 대한 기소장!
- 브라이언 어커트
<책속으로 추가>
“제 입에서 르완다인들의 고통을 철저하게 외면한 국제 사회의 무관심, 특히 서구 사회의 무관심에 대해 본격적인 개탄이 쏟아져 나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솔직히, 나아가 군인답게 말하건대 르완다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르완다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를 아직껏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사람 모두가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르완다의 제노사이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과연 있습니까? 6만 명의 군대를 비롯해 서구 사회 전체가 달려들어 몇십억 달러를 퍼부으며 지금도 여전히 문제 해결책을 찾아 노력 중인 유고슬라비아 사태보다 더 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야기한 사태가, 르완다에서는 겨우 석 달 반 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르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르완다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그 결과에 주목하는 사람이 과연 있습니까?……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몰살당한 르완다인이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만 해도 지금까지 몇백 명에 이르고, 마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p. 210)
르완다에서 도로를 달리노라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그 나라의 울퉁불퉁한 풍광이 펼쳐졌다. 경치가 빠르게 휙휙 지나가면서 흙과 유칼립투스와 목탄 냄새가 차 안 가득 스며들 때면 마치 그곳 사람들과 풍경, 아니 풍경 속의 사람들이 아무 문제 없이 늘 그렇게 지내온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들판에서 밭을 갈고, 시장에서 물건을 거래하고, 학교 운동장에서는 연푸른 원피스 차림의 여학생들과 카키색 반바지와 사파리 셔츠 차림의 남학생들이 다른 곳의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 놀며 서로 옥신각신 다투었다……그것은 삶이었다. (p. 219)
1994년 10월, 하비아리마나의 암살 직후에 발생한 학살을 조사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가 전문가들로 꾸린 그와 비슷한 성격의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양측의 무력 충돌로 르완다에서 반인륜 범죄가 일어났고……후투족이 투치족을 상대로 저지른 대량 멸족 사건은 사전 합의에 따라 계획적이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행위인바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고 명시했지만 ‘투치족이 후투족을 멸족하려는 의도로 그와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이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보고서는 유엔 총회가 1948년에 제노사이드 관련 협약을 통과시킨 이후 유엔이 그러한 범죄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이다. (p. 251)
절망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던 르완다에서는 ‘다시 살아야 할 이유, 내일을 기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전까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그런데 영혼은 스스로를 직접 치유할 수 없다. 따라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저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궁핍해진 영혼은 삶의 욕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p. 281)
에드몽의 매형은 1994년 4월 12일 도로 아래쪽 바리케이드에서 인테라함웨의 제지를 받았다. 그들은 그의 매형을 앞세워 집으로 들이닥쳤고, 그의 매형은 살인자들을 겨우 설득해 30분 동안 기도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민병대원들에게 가족이 토막토막 잘려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어린 자식들을 산 채로 변소 구덩이에 던져 넣으라고 했고, 그는 그 지시에 따랐다. 그러고 나서 에드몽의 누나와 매형이 마지막으로 던져졌다. (p. 295)
르완다 애국전선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생존자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아니 거기서 한참을 양보해 적어도 제노사이드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용서 또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의의 추구는 주로 참회의 추구로 바뀌었다. 한때는 성직자와 정치인들이 이웃을 살해하는 것이 시민의 도리라고 설파했던 곳에서 지금은 새 정부의 관료들이 책임을 통한 화해라는 복음을 전파했다. (p. 308)
난민들은 후투 파워의 폭압 아래 인간 방패로서 붙잡혀 있었다. 하지만 난민촌을 방문할 때마다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수백 명의 국제 인도주의 단체 직원들이,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 중인 자들의 단일 사회로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사회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p. 327)
가족 중에 자기 혼자만 남게 된 사연에 이어, 제노사이드 당시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아무한테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고, 대신 더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p. 378)
“지금도 전 르완다 정부군과 민병대는 그 가족들 틈에 섞여 우리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그자들은 로켓 추진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제 사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그들은 투치족은 그르고 후투족은 희생자라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그 죄를 덮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협박이나 왜곡에도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p. 409)
책속으로
플라톤 시대의 아테네 청년 레온티오스처럼 여러분도 좀 더 가까이서 보고픈 욕망에서, 아울러 호기심에 이끌려 이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와 함께 그 아비규환의 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윤리라고 할까, 교훈이라고 할까, 또는 실마리라고 할까, 어쨌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통찰력 내지는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제가 제노사이드인 경우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르완다의 참상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그 일련의 사태를 무시하고 살아갈 경우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안에서의 나의 위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하게 느껴질 터이기 때문이다. 범죄 행위가 남긴 유산을 이해하려면 그 범죄 행위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p. 28)
우리가 사는 곳에서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면 과연 우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우리도 함께 고함치며 서둘러 달려갈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강간을 저지하고 강간범을 붙잡는 일이 자주 있을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의 의무 체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 살인과 강간이 하나의 규범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이웃을 보호하는 사람이 ‘공모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루가스를 사용해 어두운 은신처에 몸을 숨긴 사람들을 울부짖게 만들어 그 소리로 생존자를 찾아내선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정상으로 여겨진다면 어떻게 될까? (pp. 48~49)
후투족, 투치족이라는 이름이 문제였다. 이름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름을 놓고 ‘계급’이 어떻다느니 ‘지위’가 어떻다느니 ‘신분’이 어떻다는 둥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름이 두 종족을 구별 짓는 근원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후투족은 농사꾼이었고 투치족은 목자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가축은 농작물보다 더 가치 있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축을 기르는 후투족도 있었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투치족도 있었다. 하지만 투치족이라는 이름은 정치, 경제적으로 ‘엘리트’의 동의어로 자리 잡았다. (p. 63)
하비아리마나가 재임하는 동안 르완다의 경제 사정은 전체적으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절대 다수가 여전히 극심한 빈곤에 허덕였다. 그런 와중에도 절대권력자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엄청난 부를 쌓았고, 국민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벨기에는 옛 식민지에 돈을 쏟아부었고, 프랑스도 아프리카에 프랑스어권 국가를 늘린다는 신식민주의 정책에 따라 1975년부터 하비아리마나 정권에 군사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또한 다른 어떤 나라 못지않게 르완다에 개발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 밖에 워싱턴, 본, 오타와, 도쿄, 바티칸시티도 키갈리와 자매결연을 맺고 구호금을 보내왔다. (pp. 96~97)
학살 행위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의식을 고취하는’ 정치 집회가 열렸고, 그 자리에는 대개 지역 지도자와 함께 지방 정부나 중앙 정부의 고위 관리가 참석해 투치족을 악마로 몰아세우며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는 일이 선행되었다……다수당 체제가 도입되자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은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개혁 성향의 야당 지도자들에게 상당히 많은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비아리마나 주변의 극단주의자들은 르완다가 온건주의로 기울지 않도록 기를 쓰고 막아야 했다. 폭력은 그러한 노력의 주요 방편이었다……결국 제노사이드는 공동체 건설을 앞두고 이루어진 일종의 실습이었다. 전체주의 체제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려면 지도자의 음모에 국민을 끌어들여야 한다. 제노사이드는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뒤틀리고 가장 과격하며 가장 포괄적인 수단이다. 1994년의 르완다는 혼란과 무정부 상태가 쇠약해진 정권과 결합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었다. (pp. 119~120)
폴은 보기 드문 양심을 지니고 있었고, 그 때문에 외로웠다. 하지만 그는 밀 콜린스 호텔의 피란민들 편에 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결과만 보면 그가 그들을 구한 것도 아니고, 또 구할 수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술, 전화기 한 대, 유명한 국제단체 주소, 저항 정신만으로 무장한 채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구하러 올 때까지 그들을 보호했을 뿐이다. (p.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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