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보다 심한 저성장 위기 닥친다
<김현철, 서울대 교수>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가 넘쳐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병원비 때문에 파산하는 고령자가 급증한다. 가계가 호주머니를 잠가 기업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매출감소에 직면하게 된다. 식당까지 줄줄이 망하면서 바닥상권이 무너진다.’
삼성 CEO들이 최고의 강사로 꼽은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한국사회에 날린 경고, 지난 18일 한국CFO협회 주최 CFO 라운드 테이블에서 김 교수는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뉴노멀>이란 단어는 매체를 통해 알고 있지만 이 단어의 실체는 전혀 모를 만큼 지적으로 천박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위기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그만큼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 <뉴노멀>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비정상(abnormal)이란 얘기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인이고 기업인이고 모두 다시 과거 호황 국면이 재현될 것으로 낙관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들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한국은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질타했다. 일본은 금융자산을 많이 축적했고 재정도 여유 있는 상태에서, 또 사장 월급이 사원 평균의 3배 정도로 균등한 상태에서도 소비위축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금융자산 축적도 않되고 재정도 열악하며 극심한 양극화 상태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거품 사회
그는 한국사회 전반에 낀 거품을 커피 값을 예로 풀어나갔다.“커피 한 잔 원가가 얼마나 될까. 원두로 치면 100원도 안 될 거다. 그런데 대학생들이 그 커피를 3000원, 4000원씩 주고 마시고 있다.” 그는 한국은 부동산 버블뿐 아니라 수출 버블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한국인 삶 전반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 닥칠 인구절벽과 그에 따른 소비절벽을 맞아 그 거품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극심한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먼저 한국이 2011년 새운 수출 1조 달러 기록 자체가 거품이라고 했다. “한국이 자기 실력으로 수출 1조 달러를 달성했다고 보는가. 천만에. 실력이 없이 수출이 급증했다. 당시 중국경제에 버블이 형성되는 시점이었는데 마침 일본 수출기업이 올스톱됐다. 전 세계 호황을 경쟁자 없이 누리면서 수출이 급등했다.”
김 교수는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던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 원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대기업들은 환율로만 60%씩 혜택을 봤다. 그게 미국을 화나게 한 거다.” 그렇게 환율에만 의존하는 안이한 기업들이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이후 중국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일본 기업이 살아나면서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게 지금 수출이 저조이유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 수출은 개도국 의존형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수출의 70% 이상을 개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개도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대기업은 그나마 버티지만 이하 그룹들은 수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는 부동산 버블이 지금 내수 부진을 초래한 주원인이라고 했다. “한국 가계부채는 1200조원을 넘었다. 지난해만 120조원이 늘었다. 과거엔 수출이 안되면 내수로 버텼는데 부동산 버블로 내수마저 침체돼 중견 이하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경험 못한 위기 닥치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위기는 위기도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구절벽이라는 얘기는 많이 알려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무얼 뜻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느 기업이나 시간이 흐르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자세로 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닥칠 위기는 한국경제가 지난 60년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인구절벽이 소비절벽을 몰고 온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수상 평균 재임기간은 1년이 안됐다. 그게 무얼 뜻하는가. 소비급감의 사회적 파장은 그만큼 심각하다. 한국에선 내년부터 식당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것이다. 식당이 닫고 이·미용실이 닫고 노래방이 문을 닫는다. 이제까지 버는 대로 쓰던 청년층 인구가 감소하면서 소비가 급감해 바닥 상인들이 망한다.”
그는 중국은 오히려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했다고 한다. 한 자녀 정책을 포기한 것은 인구절벽 이후 나타날 소비절벽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인데 한국은 그 감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일본이 망가진 이유는 기업 발 불황에 가계 발 불황이 겹친 소위 ‘복합불황’ 때문이라며 한국이 닥칠 미래를 일본의 사례로 설명했다.
“소비절벽 시대 기업은 매출이 끝없이 줄어든다. 매출이 정체되면 경쟁이 심해져 가격을 내리게 되고 그만큼 더 팔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매출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수요가 부족한 기업은 투자를 줄이며 가계소득이 감소한다. 소득이 줄어든 가계가 소비지출을 줄이면 경제는 더 위축된다.”
김 교수는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한계선상에 있는 계층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가계가 노후대비를 하면서 병원비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자산을 축적한 일본 노령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게 대부분 사망 전 5~10년 동안 병원비가 급증하기 때문이란 것. 모아놓은 자산을 병원비로 다 날리면서 ‘병원난민’이 급증하고 ‘고독사’라는 사회적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만성 저성장의 새 기업환경 닥친다
김 교수는 한계 가구가 붕괴되면 중산층의 가격민감도가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에 유니클로 같은 기업이 나타나고 저가 할인점이 급증한 것도 그래서라고 했다. 이자카야나 라멘 가게가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나온 것도 자국 시장이 와해된 때문이란 게 그의 분석.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상상을 초월한 긴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공부하겠다고 조찬간담회에 참석하고 초청강연도 한다. 일본에선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앞으로 닥칠 위기는 인건비나 잡비를 줄이는 단순한 일회성 대책으로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된 가격하락과 역성장을 겪었다고 했다. 그게 디플레이션의 심각성이란 지적이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모두 나선 면세점 경쟁은 수요 부족을 나타내는 단편적 증거라고 했다. 그만큼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만큼 앞으로 새로운 시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며 설령 새 시장이 나타나더라도 과거처럼 크거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 상황에선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한국이 인구절벽과 소비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통일대박’ 밖에는 없다고 했다. 통일이 될 경우 시장이 급팽창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그렇지만 통일을 쉽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기업들은 생존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 때 돌을 던진 이들 대부분은 한계에 부딪쳤다. 어떤 정부도 소비절벽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은 소비절벽 이전에 양극화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가 그만큼 빨리 늙어버렸다는 것. 김 교수는 기업들은 이제 탄력성이 떨어진 경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원가절감을 하면서 해외시장에 나가고, 신 시장을 개척하라는 것. 특히 전 조직이 영업력으로 무장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철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 출신으로 일본 게이오 비즈니스 스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고야 상대, 츠쿠바대 교수로 있으면서 신일본제철 도요타 닛산 후지제록스 NEC 등 일본 유수 기업의 교육과 자문을 했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LG SK텔레콤 포스코 아모레퍼시픽 등을 자문했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저성장시대’ ‘기적의 생존전략’ 등 3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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