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Titanic 리뷰
1997년/제작,각본,감독 : James Cameron /주연: Leonordo DiCaprio
Kate Winslet/음악:James Horner/194분
픽션(Fiction)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넌 픽션(Non-Fiction) 인 경우에는
사실, 영화보다도 책이 훨씬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은데
1912년 4월14일에 있었던 이 역사적인 사건,
‘타이타닉 호의 침몰’도 책으로 읽으면 무척이나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면서, 거기다 로맨틱한
이야기를 가미한 이 1997년도 판, 이 ‘타이타닉‘ 영화는
책 못지않게 매우 큰 재미를 안겨 주었고 또 흥행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대 성공을 거두면서 20세기 말의 최고의 영화로
영화사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지만 우선 이 영화의 흥행 기록은
20세기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깨어질 수가 없는 대기록을 갖고있는데,
북미지역에서만 6억 달러가 넘는(공식 집계:$600,788,188) 흥행기록을 수립한 유일한 영화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16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였다.
(총 투자비 역시 어마어마한 약 2억 달러)
또한 그 명성에 걸맞게 받은 상들은 어떠한가?
아카데미상의 역사상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1950)과 함께 공동1위로
무려 14개부분에 후보작이 되었으며, 또한, 벤허 (Ben-Hur, 1959)와 함께 공동1위로
무려 11개부분에서 상을 휩쓸었다.(이 수상 기록은 2004년도 ‘반지의 제왕’과 함께 공동1위를 하게 된다.)
참으로 대단하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이 영화를 이렇게 대단하게 하였는가?
한마디로 (엄청난)스케일이다.
20세기 폭스 와 파라마운트 는 몇 년 전 부터 아주 작정을 하고 각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술에서부터 효과 그리고 분장까지 모든 세세한 분야까지 최고로 투자를
하면서 심혈을 기우렸다.(기획: 5년/ 제작: 2년)
처음의 제작 예산이 약1억3천만 달러 정도였다는데 약 7천만 달러가 추가로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최고만을 고집하였다니 그 어찌 최고의 영화가 탄생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영화의 제작은 분명 하나의 산업이고 생산 인 것이다.
(우리 돈으로 무려 ‘2천억 원’을 투자하고 ‘1조6천억 원’의 매출을 올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 이다.)
스튜디오도 할리우드 와는 별개로 국경도시 샌 디에고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의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nia) 주의 로살리토(Rosalito) 에다 어마어마한 세트와 모형의 배를 만들어 놓고,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최첨단 기술의 CG도 이 영화의 웅장함에 물론 큰 역할 을 하였다.
1915년부터 영화화가 되기 시작한 이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1943년과 1953년에도
영화가 만들어 졌고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TV극으로도 또 제작이 되어졌지만
줄거리의 구성 면에서도 이 1997년도 판 만큼 드라마틱한 작품은 없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 초점을 맞추고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만들어 졌던
기존의 재난 영화들과는 달리, 우선 이 영화에서는 배의 침몰은 하나의 배경 사건일 뿐이고,
애절한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그 주제가 되고 있는데,
또 그 이야기 자체도 1996년, 현재에 다이아몬드 목거리를 찾아서 심해를 수색하는
첫 장면들과 절묘하게 연결을 하므로서 관객들의 흥미를 저절로 유발 시킨 것 같다.
루이 16세가 소유했다 1792년에 사라졌다는 엄청 큰 다이아몬드 목거리 는
(일명: 대양의 심장) 이배의 특실에 탑승한 피츠버그 출신의 철강부호 아들이약혼녀에게 주려고,
금고에 보관 하게 되고 바로 행운의 그 약혼녀는 Rose Buketer (Kate Winslet, 1975, 영국) 인데
그녀는 이 여행이 하나도 즐겁지 않고 오히려 속으로 울면서 이 배를 탄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구의 선술집에서 뉴욕 행 3등석 표를 걸어놓고 포커 판을 벌린
Jack Dawson( Leonordo DiCaprio, 1974. LA)은
‘풀 하우스’의 끗발 하나로 인해 그녀를 만나는 행운과 또 죽음이라는 불행을 동시에 겪게 된다.
이렇게 운명적인 이 둘의 만남은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I'm Flying"을 외치는 명장면(위의 사진)과 84년 후에 금고 속에서 발견되는
‘1912/4/14 JD’ 라는 글이 남겨진 그림(아래 사진) 등으로,
감동적인 이야기 전개를 만들어 내는데 배의 침몰로 결코 해피엔딩 이 될 수 없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더욱더 이 영화를 성공시킨 요인이 된 것 같다.
(나무판위에 로즈 를 올려놓고 자기는 물속에서 동사를 하는 잭 의 희생적인
모습으로 디캐프리오는 최고의 인기 배우로 부상을 한다.)
이 대작의 중요한 영화음악을 맡은 James Horner(1953/LA)는 메인 테마를 사전에 미리 만들어 놓고
원래는 Enya 에게 (Will Jennings 가 작사를 한) My Heart Will Go on 을 부르게 하려 했다고 하는데,
캐나다 출신의 Celine Dion 의 시원스런 창법이 이 노래를 오히려,
더욱 빛나게 하지 않았나 싶고, (Ending Credits 에서만 나옴)
대신 엔야 의 분위기는 노르웨이 출신의 Sissel 을 통해 스켓 코러스 송 으로 별도의 음악 연출을 다시 하였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파이프악기가 멜로디를 리드하는 메인 Theme 연주는
뱃머리부분에서의 그 명장면과 여러 곳에서 잔잔하게 흐르는데 이런 곡들이 수록된
이 영화의 OST 앨범, 역시 지금까지 Saturday Night Fever 가 보유한 최고의 판매 기록을 경신 하였으니,
영화 뿐 만 아니라 그 영화음악까지도 최고의 기록을 이 '타이타닉'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Saturday Night Fever'는 LP로서는 여전히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이타닉'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음악을 이야기하자면 그건 바로 찬송가인,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Nearer My God To Thee/아래음악)이다.
이 영화에서도 I Salonisti (5인조) 에 의해 마지막 부분에서 연주하는 모습이나오지만,
실제로 이 배의 침몰당시, 갑판에서, 그들은 대피하지 않고 당황하는 승객들을 위하여
죽어가면서도 몇 번씩이나 이곡을 반복하여 연주를 하였었다고 한다.
당시에 승객들을 위하여 살신성인한 몇몇 승무원들 이야기도 큰 토픽이 되었지만
이 음악인들 만큼 큰 감명을 준 경우도 또 없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 하였었다.
(이런 점들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한 요소들이다.)
이 영화 성공의 최대 공신은 누가 뭐래도 각본을 직접 쓰고프로듀서와 감독 역할까지,
1인3역의 역할을 완벽히 한 James Cameron(1954, 캐나다)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이미 ‘The Abbys’(1989)를 만들면서 바다하고는 친해진
그 이지만 그는 역시 ‘터미네이터’(1984+1991+1996)시리즈로 유명해진 감독인데
이 ‘타이타닉’에서는 편집까지도 직접 손을 댄 아주 다재다능한 양반이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무려 5년간이나 직접 사전준비 작업을 했다고 한다.
디캐프리오도 일년 전 의 로미오 & 쥴리엣 의 인기를 계속 이어 나가면서
20대에 이미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느낌이었는데,
그러나 정작 이 영화로 최고의 각광을 받은 운이 좋은 배우는 역시
Kate Winslet (1975/영국, 버크셔)이다.
이 영화 전에도 물론 ‘Heavenly Creatures’(1994/Peter Jackson 감독),
‘Sence and Sensibility’(1995), ‘Jude’(1996)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였으나,
이 영화의 로즈 역으로 단숨에 최고의 여배우로 발돋움 을 하였다.
(다음 해에 ‘Hideous Kinky’라는 특이한 작품에서 젊은 엄마 역할로 다시 주연을
맡았지만 이 영화 이후의 후속 작들에서 아직까지는 이런 크고 성공적인 배역이 또 다시 없는 것 같다.)
골퍼가 ‘만약에’ 라는 말로 가정법을 쓰기 시작하면 프로 선수가 안 될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빙산과 충돌한 후 2시간 40분만 에 허무하게 완전 침몰을 한 이 타이타닉 호 야말로
‘만약에’라는 단 한 개의 가정법만 사용을 해도 그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마도 제일 먼저 바로 선주의 과욕이 없었다면 하는 가정을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통상 일주일이 소요되던 대서양 횡단 항해에 새로운 신기록 을 수립하기 위해,
선주 Bruce Ismay 는 Edward J Smith 선장에게 최고의 속력으로 항해할 것을 지시 하였다.
(4월10일 출발 4월16일 뉴욕 도착 예정으로 최고의 시설에 최고의 성능까지 과시하기 위한 과욕이 문제였다.)
최고 23 놋트 까지 달릴 수 있는 이 배의 사고 순간의 속력은 22.5 놋트 였다고하는데,
일반적인 항해 스피드 였다면 그 정도의 빙산은 충분히 피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바람도 파도도 없는 완벽한 날씨 속에 바다가 마치 저수지 물 같다고 선장이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날씨가 좋았기에 막 달릴 수가 있었으니 오히려 좋은 날씨도 경우에 따라서는
악천우 못지않게 이런 비극을 만들기도 하나보다.)
이외에도 마침 당시의 (배)브릿지 에 망원경이 없었다던가,
애초부터 선장이 유빙의 경고를 우습게 생각했다는 점,
또, 일등 항해사인 William M Murdoch 의 판단 착오나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구명보트 의 숫자 등등
그 많은 경우에서 하나만 사실이 아니었더라도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실제 인물들의 사진인데 왼쪽부터 앞줄 3번째가 선장.)
2,223명이 승선을 하였다가, 1,517명(남성:1,360)이 죽거나, 실종되고
706명(남성:332) 만이 살아남는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만들어낸 타이타닉 호는
아일랜드(Ireland) 의 Belfast 에서 건조가 된 1912년, 당시 최고로 크고 호화로운 여객선 이었다.
(최초로 수영 풀이 있었고, 별 다섯 개 급의 호텔 포함,
로즈가 머물렀던 (특)일등실의 운임은 당시 $4,350 이었는데, 오늘날의 돈으로 약 8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아래 사진은 건조시의 실제모습인데 사람 크기와 비교되는 배의 프로펠러의 사이즈가 엄청나다. )
1912년4월10일(수요일) 정오에 건조 후, 처녀항해 로
영국, Southampton 항을 출발하여 프랑스의 Cherbourg(당일 19시) 와
아일랜드 의 Queenstown(다음날 정오)을 경유하여 북극해를 통과해서 뉴욕으로 향하던 중............
1912년4월14일(금요일) 자정 경에 캐나다의 펀드랜드(Fundland)에서
200마일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침몰을 하였다.(거의 다 와서.......)(아래 지도 참조)
프랑스의 생 나제르 에서 건조가 된(2005년 1월 출항) ‘퀸 메리 2호’가
21세기, 오늘날까지 나온 배중 가장 크고 호화로운 (유람)여객선이라고 한다.
뉴욕 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눕혀 놓은 정도의 규모로
크기는 이 타이타닉 의 약 두 배 정도라고 하는데, 최첨단의 전자 장비로 무장을 하였기에
이런 타이타닉의 비극 같은 일은 앞으로 절대로 없을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로’ 라는 말조차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험한 세상에 지금 살고들 있지 않은가?
바라 건데, 두 번 다시 이런 타이타닉 호의 침몰 같이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최고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그런 사고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다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