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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라

mkpark2022 2012. 9. 12. 17:08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라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제9편 子罕(자한)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충의와 신용이다. 자신보다 못한 자를 친구로 삼지 말라.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두려워 말라."

 

기꺼이 잘못을 고친 당 태종

 

옛말에 ‘잘못을 고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사실 흔히 말하는 ‘明君’이란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는 성인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하면 그것을 기꺼이 고칠 수 있었기에 명군이 되었던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곧 그것을 고치는 사람, 당 태종 이세민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겸청즉명(兼廳則明), 편신즉암(偏信則暗).”

 

당 태종은 “겸허하게 들으면 밝아지지만 마음을 닫으면 어두워진다.”는 뜻을 지닌 위징의 이 말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항상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거 많은 제왕들은 신하가 진언하면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마음대로 사람을 죽였소. 하나라의 관용봉이나 상나라의 비간 또한 간언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지. 한나라의 조착 역시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경계하고 있소.

 

국가를 위해서 그대들은 서슴지 말고 짐의 잘못을 지적해주시오. 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오. 그대들은 늘 수나라의 멸망을 잊지 말아야 하오. 나 역시도 항상 관용봉과 조착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으리다.“

 

이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태종은 실제로도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낙양으로 출행을 나간 태종은 공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같이 성을 냈다. 그러자 위징이 말했다.

 

“수나라의 양제는 쾌락을 좇아 도처를 여행하며 비싼 물건들을 강제로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민생을 돌보지 않아 수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지요. 지금 천하를 얻으신 폐하는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하시거늘 어찌 그 전철을 그대로 밟으려 하십니까?”

 

당 태종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질책을 받아들였다.

 

섬서, 하남 일대에 물난리가 나던 해 태종이 비룡궁을 지으려하자 위징이 또다시 그를 말리고 나섰다.

 

“수양제는 행궁을 짓기 위해 백성을 강제로 동원했기에 결국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황제께서도 마땅히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하십니다. 수양제가 한 일을 그대로 따라 하면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는 명약관화한 일이 아니옵니까?”

 

위징의 말에 당 태종은 궁궐을 지으려던 계획을 포기함은 물론 준비해둔 목재를 수해 지역으로 보내 백성을 구했다.

 

한번은 태종이 낙양궁을 지으려 했다. 그러자 이번엔 하남 섬현의 현승 황보덕참이 상소를 올려 간언했다.

 

“폐하, 낙양궁을 지으려면 백성을 동원하고 세금도 더 거둬들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백성의 부담이 더 커질 것입니다. 또한 아녀자들이 머리를 높이 올리는 것은 모두 황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소를 읽은 태종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자는 백성을 한 명도 동원하지 않고 세금으로 땡전 한 푼 거둬들이지 않으며, 궁 안의 여인들이 모두 머리를 밀어버려야 성에 찰 인물이로군!”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위징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주가 중시하지 않는 간언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위징의 말에 화를 가라앉힌 태종은 곧 황보덕참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깨닫고 그에게 푸짐한 상을 내렸다.

 

정관 2년, 태종은 수나라의 신하였던 정인의 딸이 출중한 외모에 총명하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곧 그녀를 후궁으로 삼으리라 결심한 황제는 책봉을 위한 문서까지 준비했다. 그때 그녀가 이미 육씨 가문과 정혼했다는 소식을 접한 위징은 황제를 급히 말렸다.

 

“폐하는 천하 백성의 부모이시니 마땅히 그들을 아끼고 위로하셔야 합니다. 그들의 근심을 걱정하고 행복을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자고로 덕을 행하는 군주는 언제나 백성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궁궐 안에 살면서도 백성이 사는 곳을 걱정하고 산해진미를 먹으면서도 백성이 굶주리지 않을까 염려했지요.”

 

위징은 쉼 없이 직언을 쏟아냈다.

 

“비빈을 맞아들이기 전에도 그들의 집안에 이미 경사가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인의 여식은 이미 다른 집안과 정혼했습니다. 그런 여인을 후궁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어찌 백성의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까?”

 

위징의 이야기를 들은 당 태종은 즉시 후궁 책봉 계획을 접고 정인의 딸이 육씨 가문으로 시집가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자책하며 말했다.

 

“이미 정혼한 여인을 후궁으로 책봉하려 했다니. 사전에 알아보지 않은 내 불찰이로다!”

 

이처럼 신하의 간언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고쳤던 그였기에 당 왕조를 크게 번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지침

 

공자는 수양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잘못을 알고 이를 고치는 행동’은 그 자체가 성장을 향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단지 잘못의 크기와 수가 다를 뿐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알아차리고 고치느냐이다. 실수를 하고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나중엔 더 큰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반대로 겸허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정하려 노력하면 그 과정에서 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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