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수필)

아침 고요 산책길 / 김상경

mkpark2022 2012. 9. 28. 12:23

 

 

 

 

시간을 견뎌낸 진실은 아름답다

 

"어떤 나무를 제일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릿하게 저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대답한다

"아카시아나무요." 연전에 기자 출신의 어느 저자가 쓴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책이 있었다

 

아마 못생긴 나무들 중 가장 앞자리에 놓일 만한 게 아카시아나무일 것이다

별로 우아하지도 않고 게다가 가시까지 달린 이 나무는

이상하게도 황페한 땅, 벼랑진 곳 아니면 과수원 가장자리나

울타리 한구석에 터를 잡는다

 

때때로 우리는 오랜 시간이 흘러간 뒤에야 진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진실이 진실로 드러나기 위해 온갖 험난한 구비를 돌아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나이테에는 겸손하고 고난을 견뎌내는

이들의 피와 땀과 숨결이 깃들게 마련이다

아카시아 나무처럼 말이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윤석중 님이 작사한 동요(고향 땅)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오늘 내게 알 수 없는 오해를 가져오고

통곡하게 하는 것들이 있을 때 조용히 안으로 잠기며

고향 땅에 묻고 온 한 그루의 아카시아나무를 떠올려볼 일이다

 

진실은 때로 오랜 시간을 요구할 터이니 겸손과 인내로

시간을 견뎌낸 진실은 어떤 것보다 강렬한 향기를

뿜어낼지니 꽃 색깔도 계절을 탄다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사계절을 지내노라면

꽃 색깔도 계절 따라 유행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맞춰 무수한 꽃들이

노란꽃,분홍꽃,흰 꽃,빨간꽃, 그리고...보라색 꽃 등

 

나름대로 아름다운 색상으로 차려입고 그 자태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이다.

 

아침고요의 계곡에는 풍년화와 노르스름한 꽃이

개화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노르스름한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작은 꽃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내 마음의 나무

 

산기슭 오솔길에 아름드리나무 하나

어제도 오늘도 묵묵히 서 있다

 

화려한 봄날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노래하던 새들 날아 가버려도

나무는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수많은 이들이 만났어도 잊혀지지않는 이름이 있다

수많은 이들이 사랑했어도 잊혀지지않는 얼굴이 있다

 

사랑은 마음에 심는 것

 

사랑은 가슴에 뿌리박는 것

너 이제 내 마음의 나무되어

바람 거친 들판을 지키어다오

 

변화 무쌍한 길을 걸으며

그들은 또 어떤 상념에 젖어들 것인가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하늘나라 정원이 펼처지고 있다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끝나는 곳이다

 

문득 천상병 시 "귀천(歸天) " 이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출처: 아침 고요 산책길 "저자 : 김상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