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2018년 4월 24일(화) JTBC뉴스룸 엔딩곡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며칠은 말 그대로 역동적인 날들이었습니다.
엊그제 밤까지는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바로 하루 뒤인 어제는 서울에서 서로 다른 내용의 특보를 전해드렸으니까…
우선은 저부터가 정말로 흔치 않은 경험들을 불과 며칠 사이에 겪어내고
오늘 다시 앵커브리핑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잠시 숨도 돌릴 겸…
특별히 두 곡의 노래와 함께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두 곡은 이미 뉴스룸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노래들이기도 합니다.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김민기 / 봉우리 -
누군가…
자신이 아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지만
오르고 보니 그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더 한참 이어져 있었다는 이야기.
그는 뒤늦게 깨달은 세상의 이치를 나지막한 읊조림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 역시.
그가 말한 고갯마루는 아니었을까…
주고받은 말들과 약속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서로 애써야 할 과제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고…
오랜 분단의 유전자를 지닌 우리가 감내해야 할 숙명 같은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 흘러갈 수도 있겠지요.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 정인 / 오르막길 -
김민기가 삶의 끝없음을 봉우리에 올라 비로소 깨달았다면
그의 후배 윤종신이 가수 정인의 목소리에 담은 오르막길은 결국 오르고야 말,
아득한 저 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혹 서로 손을 놓치더라도 걱정하지 말자
결국은 우리는 다시 만난다
이 가사 하나만으로도…
우리 예술단 평양공연의 첫 자리에 놓일만한 자격이 있는 노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북·미회담도 끝났고, 지방선거도 끝났지만 결국 끝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길고도 구부러진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래도 오늘쯤에는 낮고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 흐르는 땀과 함께 잠시 숨을 고르는 하루를 원하신다면.
당신의 등 뒤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으면…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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