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시)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 이정하

mkpark2022 2009. 7. 31. 17:46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1

 

기차는 오지 않았고
나는 대합실에서
서성거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옷을 입은 역수만이
>
고단한 하루를 짊어지고
플랫폼 희미한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조급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어서
그가 들고 있는 깃발이 오르기를 바랐다.
산다는 것은 때로 까닭을 모를 슬픔을
부여안고 떠나가는 밤열차 같은 것.
안 갈 수도, 중도에 내릴 수도,
다시는 되돌아올 수도 없는 길.
쓸쓸했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언제나 연착했고, 하나뿐인 차표를
환불할 수도 없었으므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버릇처럼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그와 닮은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끝내 배웅도 하지 않으려는가,
나직이 한숨을 몰아쉬며 나는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
.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 열차를 탔다 2

      밤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가슴 속 너무 깊숙이
      들어 있어
      꺼내지도 못할 사연이.

      졸려서 충혈된 게 아니다.
      지나온 생애를 더듬느라
      다 젖은 눈시울이여,
      차창 너머 하염없이
      무엇을 보는가.
      어둠의 끝, 세상의 끝이 보이는가.

      밤열차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깊이 정들지 말자.
      그저 조용히 있게 내버려두자.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3

낯선 간이역들, 삶이란 것은 결국
이 간이역들처럼 잠시 스쳤다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스친 것조차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달리는 기차 차창에 언뜻 비쳤다가
금세 사라지고 마는 밤풍경들처럼.

내게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빨리 내 곁을 스쳐지나갔는지.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는 혼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정작 내가 그의 손을 필요로 할 때는
옆에 없었다. 저만치 비켜 서 있었다.

그래, 우리가 언제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더냐.
사는 모든 날이 늘 무지개빛으로 빛날 수만은 없어서,
그래서 절망하고 가슴 아파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그리웠던 이름들을 나직이 불러보며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바람 불고 비 내리고 무지개 뜨는 세상이 아름답듯
사랑하고 이별하고 가슴 아파하는 삶이 아름답기에.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



詩: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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