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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일주 4,200Km의 여정 (하나)

mkpark2022 2016. 11. 23. 12:46

 

 

터키 일주 4,200Km의 여정 

 

 

장시간의 비행으로 기내에서 두 끼의 식사를 마치고 현지 시각 16:10 이스탄불 도착하다.

레드캡 여행사 김정훈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했다.

의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는 자기소개와 함께

지금부터 터키 전국일주의 4,200Km의 여행을 시작한다.

 

 

- 그랜드 바자르의 물품들 -

 

 

이스탄불은 터키의 최대 도시이며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예전 동로마제국(비잔틴)의 수도로

원래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렸으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된 이후 이스탄불로 불린다.

호텔로 들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어서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라는 그랜드 바자르를 관광했다.

1461년에 형성되어 보석·그릇·카페트·향신료·장신구 등을 소매로 판매하는 상설시장인데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진 각 종 공예품들이 즐비했다.

삼십여 분의 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오기로 하고 호텔로 향한다.

 

- 터키산 카페트-

 

 

20161019(차낙칼레·트로이·아이발릭)

 

시차의 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 네 시가 되니 눈이 뜨인다.

로비에 나가보니 벌써 많은 일행들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침은 샐러드와 케밥이었는데 지중해 연안의 야채는 신선하고 물기가 많아 싱그러웠다.

이른 시간에 버스에 올라 여섯 시간이 소요되는 트로이로의 이동이 시작된다.

가는 도중 가이드는 한국 역사 4,300여 년 동안 961번의 전쟁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터키에 대한 설명이 시작된다.

 

 

- 트로이로 이동 중 마르마라 해협의 유람선 -

 

 

터키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우리 조상은 중앙아시아에서 왔으며 대한민국은 형제 국가이다.”

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 국가(國歌)를 연주하는데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우리의 붉은 악마들이 올린 터키의 대형국기가 관람석에서 올라오는 장면이

후렴의 첫 부분에 등장한다는 것과 공항에서의 입국신고서가 없고 입국심사도 한국인의 경우는

거의 형식적이라는 설명과 함께 터키의 면적은 남한의 8배이고 인구는 8천여만 명으로

국민의 40%가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단다.

 

 

- 마르마라 해협의 즐비한  주택들 -

 

 

국민의 97%가 무슬림이지만 그 중 30%정도만

신실(信實)한 사람으로 이들은 남자의 경우 보름에 한 번 제모(除毛)를 할 정도로

열심이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정도라고 한다.

 

- 트로이 유적 -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에게는 자식이 없자(노년에 이삭을 낳음)

하녀인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스마엘이고

아랍인들은 자신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이라 믿는다고 한다.

 

이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남자 한 명당 양 한 마리를 잡아 고기는 나눠먹고

가죽은 교회에 헌납하면 정부에서 가죽을 수매해 산업으로 특화하고 있단다.

 

7개 주를 건너는 길 양옆으로는 구릉의 밭들이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유채와 해바라기 그리고 밀의 삼모작으로 경작을 하고 있으며

유채는 카놀라유를 생산하기 위해 국책사업으로 심고 있으며

디젤은 바이오유를 쓰도록 권하고 있단다.

 

 

 

 

 

잠시 휴식 후 가이드의 설명은 다시 시작된다.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현재의 이스탄불이고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며

면적의 3%는 유럽이고 97%는 아시아이며 인구는 2천만 명으로 면적은 서울의 9배이며

우리 교민은 2천여 명이 살고 있는데 15백여 명이 기업체 주재원이란다.

대중교통은 전철과 택시 그리고 트랜바이가 있는데

트렌바이는 우리의 현대가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으로 멘토라는 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인 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면서

자신의 아들을 친구인 멘토에게 맡겼고 10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왕의 아들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여 그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는 훌륭하게 제자를 교육시킨 사람을

가리켜 멘토라는 호칭을 쓰게 됐다는 것과

 

 

- 트로이 유적 -

 

페넬로페는 오딧세우스의 아내로 10여 년에 달하는 남편의 트로이 원정 중

많은 구혼자에게 지금 짜고 있는 자수가 완성되었을 때 결혼한다고 약속하고

낮에 짠 천을 밤에 풀어 시간을 벌면서 정절을 지켜냈다는 것 등 인문학 강의가 이어진다.

 

강의가 이어지는 도중 어느새 마르마라 해협에 도착했다.

골드 혼의 다리 양옆으로는 많은 EH(Everyday Holiday)클럽 회원들이 고등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터키 경제의 현실을 보는 듯 했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많은 열차들이 정차되어있었는데

유럽행 열차로 2012년 도산했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라는 지점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어 도산했다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 트로이의 목마 -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보니 일리야드의 배경지가 된 트로이 유적지에 도착했다.

트로이는 성서에 나오는 사도 요한(사울바울)이 다멧색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전도를 하러 가는 도중

드로아(트로이 남방 25Km지점)에서 환상을 보고 소아시아 선교를 중단하고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곳이라고 한다.

 

1871년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굴된 유적인데

유적의 일부가 독일로 넘어가 슐리만이 독일에서는 역사학자로 불리지만

터키의 입장에서는 도굴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에 뭔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 트로이 유적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