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행 (파리, 스톡홀름, 런던 편)
XX년 XX월 XX일
一生에 두 번 가기 힘들다는 북유럽여행 과연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침 7시, 인천공항 3층 E카운터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보인다.
인사를 나눈 후 출국수속을하고, 보안검사대로 가니 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무장단체의 테러첩보가 접수되어 보안검사가 까다로워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오전 9시 50분,
비행기는 굉음을 지르며 하늘로 오르고 흩어진 섬들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진다.
한 시간 남짓 날라 온 비행기는 중국의 ‘탕산’하늘을 지나 ‘베이징’을 향한다.
창을 통해 내려다 본 중국대륙. 끝없이 펼쳐진 산과 그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강이
산수화를 보는가 싶더니,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한 모래밭이 이내 지나온
산야와 들판의 몇 곱절이 되는 사막의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한숨자고 나니 네비게이션에는 속도 870㎞/h, 고도 10670m, 외기온도 영하 57℃,
비행거리 2900㎞를 가리키고 있다.
울란바토르 → 사안산맥 → 노보시비르스크 → 옴스크 → 모스크바
총 비행거리가 9천㎞이니 앞으로 2배를 더 가야 한다.
자다가 깨기를 몇 번 이렇게 11시간 반 동안 날아와 도착한 파리의 드골공항이다.
입국수속을 마치니 현지시각 오후 3시다.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우리를 맞이한다.
중년의 아줌마가 다짜고짜 일정이 바쁘다면서 관광버스에 오를 것을 재촉한다.
처음 간 곳은 ‘루브르박물관’이다.
- 루브르 박물관 경내 -
가이드는 수신기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소장품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린다.
마음에 담아가라는 가이드의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른다.
이에 질 새라 작품설명에 대한 가이드의 집념도 대단하다.
1시간 남짓, 지루한 설명을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이드를 놓치면 낭패라 가이드 꽁무니만 따라 다니다 보니 뭘 봤는지?
“이 쪽으로, 저쪽으로 오시오.”할 때는 까딱 잘못하면 바로 미아가 될 판이다.
마루바닥에 앉아 열강을 하는 교수와 경청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각자가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정말 자유분방하다. 관광객이 지나가면 잠시 딴 짓을 하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 자유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미래의 미켈란젤로들! 만국의 관람객들이 붐비는데도 진열된 작품과의 거리는
불과 4~50㎝이다. 그래서 아주 가까이에서 관람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들어가지 마시오나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까지 새겨두는
우리네와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루브르박물관의 3대 소장품인 ‘모나리자, 비너스像, 승리의 여신상
(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을 카메라에 담고 전리품들을 보면서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우리의 외규장각도서가 생각나는 것은 서글픔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루브르 박물관을 뒤로 하고 나오니 프랑스혁명 당시 살육의 현장이었던
‘콩코드광장’ 이 나온다. 광장 중앙에 이집트가 기증 했다는 ‘오벨리스크
(기원전 13세기,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가
승리의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 서 있다.
차를 타고 광장을 한 바퀴 돌고는 프랑스의 자존심인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승전기념물인 개선문으로 갔다.
- 개 선 문 -
개선문에는 승리(나폴레옹 군대의)를 나타내는 그림과 주역이었던 600여명의
장군 (밑줄이 그어진 영웅들은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개선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지하도를 통해 나오는데 간간이 2차대전에 참여했을 듯한
80대의 노인들이 훈장을 단 제복을 입고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보였다.
-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가지 -
개선문을 중앙으로 남동쪽은 과거를,
북서쪽은 미래를 나타내는 건축물들이 프랑스의 건축물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남동쪽에 위치한 파리는 300년 전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대부분 5층 내외로 1층은 상가, 그 위층은 사람들이 사는 주상복합건물이다.
들어가 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건축외벽은 어느 것 하나 예술품이 아닌 것이 없다.
베란다는 화초를 내 두어 어쩌면 보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고 가꾸는 나라인 듯하다.
지상으로 노출되는 모든 가로등, 전선, 간판 등은
고전적인 건축물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호등은 사람의 키 높이에 맞춰져 기둥도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엄격한 규제로 건축물과 도로는 중세의 모습 그대로다.
- 샹젤리제 거리의 노천카페(주변에서 개선문이 쓰여졌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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