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ote(기행&서간)

유럽 기행 (넷)

mkpark2022 2009. 12. 16. 21:26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몽마르트 언덕에 올랐다.

해발 130m,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산동네가 천지인 우리가 볼 때는 약간 경사진 곳에 불과하다.

 

파리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이들은 평지에 산다.

입구에는 낡은 건물, 싸구려 좌판들, 초췌한 모습에서 

달동네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 몽마르 뜨르 언덕의 연인들 -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관광객과 파리시민들이 붐볐다.

소매치기로 보이는 흑인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이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몽마르트르”라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몽마르트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사크레쾨르성당’이

우뚝 솟아 이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성당 우측에는 가시관을 든 ‘루이 9세’가 좌측에는 칼을 높이든

 ‘잔다르크’가 말을 타고 있었다.

 

 

- 몽마르뜨르 언덕의 악사들 -

 

 

성당 내부는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다.

성당 우측에는 유명한 화가의 거리가 있다.

조그만 사각공원에 거리의 화가들이 정물화, 풍경화를 팔거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주변에는 식당과 카페, 기념품 상점들이 있었는데

시내에 비해 가난한 모습이 한눈에 보여 마음을 무겁게 한다.


몽마르뜨르 여행을 마치고 오후 5시 30분

드골공항을 떠난 비행기(SK572, 스웨덴항공기)는 예정시간보다 빨리

‘스톡홀름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하고 나가니 오후 8시다.

 

도착하자마자 말처럼 생긴 가이드가

다짜고짜 건너편으로 오라고는 혼자서 가 버린다.

뭐 저런 녀석이 있나 싶다. 버스를 타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말투나 행동이 말괄량이다.

 

호텔(Hilton Infra City Hotel)에 도착하자  내일은 6시 반까지 짐을 실고

20분 이내에 식사하고 승차하란다.

늦은 사람은 호텔에 있든지? 

알아서 하라면서 도시락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 몽마르뜨르 언덕의 화가의 거리 -

 

 

XX월 XX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 짐을 꾸리고 식당에 갔다.

음식은 마치 우리나라 뷔페와 비슷하다. 특히 발효식품이 다양하다.

예정보다 10분 빨리, “다 왔죠?” “출발” 두 마디로 끝이다.

 

버스 출발과 동시에 청산유수와 같은 가이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은 미국으로 입양 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입양 2세라고 소개한다.

할아버지가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이사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덕분에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많아 8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스웨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UN에서 스웨덴의 홍보대사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약 5분 정도의 소개를 끝내고 스웨덴에 대한 강의가 시작된다.

 


                                  

         - Susanne Falk 주변의 마을 -

 

 

팔과 다리가 긴 사람들, 70일간의 백야와 70일간의 흑야가 있고,

태양신을 믿는나라, 70%가 삼림이라 사냥과 낚시가 삶의 주였던 나라,

사회민주주의 국가, 노동자의 왕국, 성이 개방된 나라, 교육,의료,노인에

대한 정책이 평생무료이고, 주사기와 성냥을 발명한 나라,

노벨의 나라 등등 마치 책을 읽는 듯 말을 한다.

 

‘Susanne Falk’라는 음식점에서 ‘Kycking File Med Ris’라는

스웨덴요리를 점심으로 먹었다. 닭고기요리였는데 메인보다 전식으로 나온

야채사라다가 정말 맛있었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로 만들었다는데

야채를 씹을 때마다 싱싱한 물기가 입안 가득하다.

 


                            

        - 언덕에서 내려다 본 스톡홀름 시가지 - 

 

 

식사를 마치고 정오가 조금 넘어 ‘스톡홀름’을 향했다.

원래 목적을 마쳐서 그런지 가이드의 태도가 갈 때와는 사뭇 다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열변은 계속된다.

 

‘말괄량이 삐삐’가 원래 스웨덴의 동화라는 이야기,

치료비가 무료라 노인들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아 의사를 만날 수 없고

(3개월 전에예약을 해야) 담배 값이 워낙 비싸 돈 많은 것처럼 보이려는 젊은이

말고는 거의가 피우지 않는다는 등등…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붕괴사고가 연이어 일어날

당시 방송을 본 어느 학생이 자신을 찾아와 한국은 왜 걸핏하면

무너지고 그러느냐? 는 질문을 받고, 너희 나라는 돌덩어리만 있지만 우리는 흙이 많아

그렇다 왜? 너희 조상들은 공부를 안 해 너처럼 돌대가리들만 있는데 우리 조상

들은 옛날부터 책을 많이 읽어 나 처럼 똑똑한 아이들만 있다는

말로 되받아 쳤다는 당찬 모습에 박수가 터진다.

 

 

 

도로변에 현대, 삼성, LG의 대형 간판이 나오자,

이번에는 노동활동에 대한 질책을 한다.

선진노동운동을 배우러 온 현대의 노동자들이 효과적인 쟁의를 위해서는

공장 가동중단이 필요하다는 제의를 했다가 망신만 당했다는 충고도 빼놓지 않는다.

그 외에도 삼성의 애니콜, LG의 냉장고, 현대의 싼타페를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청산유수 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벌써 ‘스톡홀름’이다.

도로주변에 설치된 간판과 가로등의 지지대가 넘어질 것 같이 가늘다.

스웨덴은 지금까지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복 받은 나라’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통나무라는 ‘스톡’과

섬이라는 ‘홀름’이 합쳐져 통나무 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호수 위에 떠있는 14개의 섬을 52개의 다리로 연결하여 만든 도시,

수심이 30m나 되어 대형선박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본 스톡홀름은 단풍과 건축물, 호수와 배,

다리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다.


 

- 발틱 해 연안의 마을 -

 

 

유네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건너편 작은 섬에 는 붉은 벽돌집 감옥이 있었는데

지금은 호텔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 죄수복을 입고 들어가고 자신이 정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절대 나올 수 없는데도,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란다.

바이킹건물과 시청건물 등을 배경으로 스톡홀름에서의 추억을 담았다.

 

스톡홀름의 시청은 800만개의 벽돌과 1900만개의 금도금 모자이크로 만들어졌으며

이곳에 있는 ‘푸른 방’에서는 매년 노벨 수상식 후 만찬이 열린다고 한다.

 


           

시내관광을 마친 일행은 저녁식사 전 ‘크리스털’ 가게에 들러 선물을 샀다.

돌의 나라라 그런지 다른 것은 몰라도 크리스털 하나는 유명하다고 한다.

시내에 있는 ‘남강식당’에서 돼지고기를 굵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은 후 곧바로 공항을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인연’이라는 불교용어를 빌려 자신이 전생에 우리들의

어머니였을 거라는 말을 화두로 가이드 역을 마무리 한다.

만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신없이 설치고 떠들던 모습이 점점 아름답게 보인다.

 

파리에서도, 스웨덴에서도, 왜 저렇게 서두를까? 했는데,

이제 헤어지려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일정에 대한 강박관념이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공항에서의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말괄량이 아가씨가 왠지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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