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史劇) 속 인물, 제4편 <무인(武人)시대>의 이의민
〇 천민(賤民) 이의민, 왕을 꿈꾸다
- 1170년 문무차별에 못 이겨 칼을 뽑아든 무신들 <정중부의 난>으로도 알려진 <무신란>, 그 뒤엔 숨은 주역 이의민이 있었고 고려 최초이자 유일한 천민 출신의 최고 권력자, 나아가 왕까지도 꿈꿨던 인물 이의민, 과연 그는 누구인가?
- 1173년 10월 초하루, 경주 보현사 후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무신정변의 주역 이의민과 무신정변으로 폐위된 왕 의종(毅宗), 이의민은 맨손으로 의종(毅宗)의 등뼈를 부러뜨려 무참히 살해하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한다.
- 고려 의종(毅宗)의 비참한 최후, 안방극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순화시킨 것이고 실제로는 드라마보다 더 잔혹하다. “이의민은 의종을 끌어내어 술 몇 잔을 올리고 그의 척추를 꺾어 버렸는데 손놀림에 따라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껄껄 웃기까지 했다” & “의종의 시체를 이불에 싸서는 가마솥 두 개와 함께 묶어서 연못 가운데로 던져 넣었다.” <고려사 반역열전 이의민>
- 무신집권자들 중 이의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의민은 고려 역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역동적인 시대의 인물 ① 천민에서 최고 권력자가 된 고려시대 최초의 인물(뒤를 이은 김준과 고려 말의 신돈) ② 스스로 왕이 되기를 꿈꿨던 인물(고려 말의 이성계와 단 둘 뿐)
※ 고려시대 무신정변(武臣政變)
① 고려 전·후기를 나누는 분기점
② 이자겸의 난·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등을 통해서 문벌귀족사회의 모순이 증폭된 결과물
〇 천민 이의민, 출셋길이 열리다.
- 이의민의 인생
① 소금 · 체 장수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사찰의 노비로 일천즉천(一踐則踐), 부모 중 한명이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 또한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다는 것
※ 고구려 15대 미천왕도 젊은 시절 소금장수로 숨어 지냄
- 이의민의 외모에 대한 기록?
8척의 거구로 위로 두 형이 있었는데, 세 아들이 못된 짓을 일삼자 경주 안찰사는 이의민 형제를 투옥하게 되고 매질을 견디지 못한 두 형은 옥사하게 되지만, 혹독한 고문에도 살아남은 이의민을 눈여겨 본 안찰사는 이의민을 경군(京軍)으로 보낸다.
※ 경군(京軍) : 고려시대의 중앙군으로 오늘 날의 수도방위사령부의 일반사병
② 이의민은 군인이 된 다음 의종(毅宗)의 총애를 받는 행운을 얻게 되는데, 결정적 계기는 의종(毅宗)이 좋아하던 수박(手薄)경기 때문, 고려시대 과거시험에는 ‘무과’가 없어서 군인 중에서 무신(武臣)을 선발하였는데, 천민출신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발탁
〇 이의민, <무신란>으로 부상하다.
- 천민 이의민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
역시 무신란 때문으로 당시 이의민의 직위는 별장(정7품)으로 하급무신이었으나, 공을 세워 권력자의 눈에 든 이의민은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 무신란을 일으킨 주요 3인방은 정중부 · 이의방 · 이고, 당시 정중부는 종3품(대장군) 나머지 둘은 정8품(산원)의 하급무인으로 원래 계획은 이의방과 이고가 하였으나, 정중부에게 무신란의 주동을 부탁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의방의 동생 이린은 이성계의 선조(先祖)
- 드라마 <무인시대> 1170년 8월, 여느 행차 때처럼 의종(毅宗)은 술판을 벌이고 무신들에게 <오병수박희>를 하라고 명하는데, 한때 수박희의 달인이었던 노장 이소응에게 젊은 무신과 한판 겨를 것을 명하여 겨뤄보지만 노장 이소응은 상대가 되지 못하고 패하게 되는데··· 이에 박장대소하는 의종(毅宗)과 문신들
- 한술 더 떠 달아나는 이소응의 앞을 가로막는 환관 한뢰가 막아서서 뺨을 때리며 비난한다. “명색히 대장군이라는 놈이 졸개 하나를 대적하지 못하고 어찌 뒷걸음질만 치느냐? 너 같은 놈이 어찌 황상폐하를 보위하고 고려국의 안위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
- 무신을 향한 문신들의 조롱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마침내 무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면서 이날의 일로 권력의 칼자루는 무신들 손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거사를 치를 것이야. 문신의 관을 쓴 놈은 서리라 할지라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내 손으로 그놈들의 씨를 말려버릴 것이야.” <이의방의 독백>
〇 문신의 씨를 말리다.
- 당시 60세였던 이소응(대장군 종3품), 문신 환관 한뢰(기거주 종5품)의 무례한 행동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 또한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정중부에게 김돈중(김부식의 아들)은 “감히 무신 따위가 수염을 기른다.” 하면서 수염을 촛불로 태워버리면서 무례·하극상·노인 구타·희롱·폭행·방화까지···
- 게다가 향락과 사치에 빠진 의종(毅宗)은 당시의 연회장소로 영통사·흥왕사·현화사·연복정·화평재·보현원등을 옮겨 다니면서 잦은 행차로 호위담당 무신들의 부담은 가중
- 무신을 무시한 이유?
고려의 뿌리 깊은 문무의 차별 때문으로 무신 최고의 관직은 상장군인 정3품, 하지만 고려의 모든 정책 결정기구인 도병마사(국방회의 기구)와 식목도감(법제회의 기관)은 종2품 이상만 참석할 수 있어서 사실상 주요정책 결정에 무신은 배제됐던 것.
- 군대 지휘통솔권 마저 문신이 차지하여 강감찬·서희·윤관·최영·최무선은 모두 장군이지만 강감찬·서희·윤관은 문신으로 얼마나 무신이 차별을 받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
〇 고려시대 인기 스포츠, 수박(手搏)
- 무신란의 발단인 수박경기는 이의민의 특기로 (손 수/ 手, 때릴 박 /搏)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 무예 ‘고려무용총의 수박도’에도 등장하고 수박에 관한 처음의 문헌은 고려시대이지만 조선 전기까지 군사를 수박으로 선발, 수박 승패에 돈을 거는 도박행위도 성행하여 로마시대의 검투사 경기처럼 관람형 스포츠로 발전했던 것
- 수박경기는 서민들과 일반 군사들이 주로 즐겼고, 무관들은 수박을 매우 천시하고 주로 격구를 즐겼는데 격구는 말을 타고 공채로 공을 골문을 넣는 경기로 서양의 폴로보다 더 격렬하며 여진족에 대항할 기병의 필요성이 증대하여 신기군(여진 정벌을 위해 형성된 기마부대)에게 격구를 시킨다.
- 격구는 서양의 폴로와 유사?
비슷한 경기이나 폴로보다 격구가 훨씬 더 격렬했을 것이고 격구 채에 공을 얹어 이동이 가능하고 원심력을 이용하여 채를 휘돌리는 것도 가능하여 공을 뺏기 위해서는 격렬한 몸싸움이 필요하여 격구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기도 다룰 수 있어서 일석이조인 셈
- 군사훈련보다 스포츠에 치중, 괜찮았을까?
각종 무예를 연마하고 병법을 익히면서 전략가로서 군대 지휘관이 될 무장들이 웃통을 벗고 수박을 하면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고, 격투기 선수로 전락한 무장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결국 <무신란>으로 귀결된 것이 아닌가(?)
〇 이의민의 초고속 출세
- ① 경군(일반 병사), 고문에서 살아남아서 ② 별장(정7품) 소령, 수박을 잘해서 ③ 중랑장(정5품) 대령, 무신정변 때 사람을 많이 죽여서 ④ 대장군(종3품) 중장, 의종(毅宗)을 시해(弑害)해서 ⑤ 상장군(정3품) 대장, 반란군 장악··· 승진의 공통점은 많이 죽이는 것
- 이의민이 의종(毅宗)을 시해하게 된 이유?
무신정변 이후, 거제도에 유폐된 의종(毅宗), 1173년 문신 <김보당의 난>으로 의종(毅宗)을 복위하기 위하여 경주까지 모시고 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의종(毅宗)이 살아있는 한 복위의 명분이 남게 되고, 의종(毅宗)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순간 무신정변에 참여했던 무신들은 모두 제거되는 것이므로 그 싹을 없애기 위해 그 임무가 이의민에게 맡겨진 것
※ 김보당의 난 : 무신정권에 반대하여 문신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꾀하며 일으킨 정변으로 무신집권세력에게 위협이 된 의종의 존재
〇 무인시대 그들만의 리그
- 무신들이 권력을 확실하게 독점하기 위해 설치한 정치기구 <중방>을 중심으로 하여 반대하는 세력은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권력을 독점
※ 중방(重房) : 고려시대 장군으로 구성된 군사 회의기구
- 무신들의 횡포에 관한 기록 “애초 의종은 사저 세 채를 지어 관북댁·천동댁·곽정동댁이라 이름 짓고 엄청난 재물을 거둬들였는데, 반란을 일으킨 후에는 정중부·이의방·이고가 모두 나눠 차지했다” <고려사-열전 반역, 정중부> 이것은 무신정권의 한계를 보이는 장면이고 무신세력 내부에서도 다툼이 발생하여 이의방이 이고를 살해하고 또 자기의 딸을 태자비로 삼게 하는데··· 이러면서 민초들의 공분을 사게 된다.
- 또 한 가지는 그간 차별받은 한(恨)을 파괴와 보복으로 앙갚음한 무신들,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이냐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은 전무인 상태로 보복과 약탈만이 반복되었던 것
- 무신세력의 분열, 국왕 시해범 이의민도 평탄하지는 못했을 듯?
왕조국가에서 왕을 살해한 주범이라는 것은 많은 정적들을 끌어들인 셈, 실제로 경대승이 등장하여 기본적으로는 복고(復古)를 외치면서 이의민의 천적으로 부각하게 되고 경대승이 살아 있는 한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없었던 이의민, 그러나 경대승은 30세에 병사하게 되고 이틈을 이용해 이의민은 최고 권력자가 되는데 경대승은(1154~1183) 정중부 등 집권 무신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여 복고를 외치며 문·무신을 고루 기용하려고 노력
※ 무신들의 죽고 죽이는 권력 이동
- 이고가 이의방을 죽이려다 이의방의 역공을 맞아 이고는 죽게 되고
- 이의방은 폭정을 일삼다 정중부에 의해 살해되고
- 경대승은 무신란의 한계를 느끼고 정중부를 죽이게 된다
- 경대승은 젊은 나이(30세)에 병사하게 되고, 이의민만 남게 된다.
- 집권기간 5개 월, 무신란의 분열시대는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보여 주는 것
〇 무인시대, 권력의 끝
- 드라마 <무인시대>의 명장면, 항상 꿈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을 만나는 무신권력자들, 피는 피를 부를 뿐···
- 권력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권력이 수단이 되었을 때는 내가 이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 인가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권력만 탐(貪)하게 되면 결국 그 권력에 자신도 희생당하면서 끝나고 마는 것으로 비전(Vision)이 없는 권력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친다는 것
-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도 멀쩡하다가 권력의 반지를 끼기만 하면 상황이 바뀌어 버리는 것이 권력의 속성으로 앞선 집권자들과 똑같은 길을 걷는 이의민, “명종 24년(1194), 이의민이 인사권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바람에 모든 정치가 뇌물로 결정되었으나 그 일당들이 널리 퍼져있는 바람에 조정의 신료들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 “백성들의 거주지를 대거 점탈해 저택을 짓고 남의 토지를 약탈하는 등 온갖 탐학을 저지르니 온 나라가 두려움에 떨었다.” <고려사 - 열전 반역, 이의민>
-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쥐면 그것을 남용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中> 이는 부패한 권력의 문제는 인류의 오랜 지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〇 이의민 일가의 포악한 탐욕
- 이의민의 여성 편력?
<고려사> 기록에 의한 그의 부인에 관한 얘기, 시샘이 많아 여종들을 때려죽인 최씨(이의민의 부인) 그러면서 정작 최씨 자신은 남종과 간통하여 바람을 피워 아내를 쫓아낸 이의민은 여자를 취하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 이의민 뿐만 아니라 그의 세 아들 지순·지영·지광, 장군 시절에는 상관과 왕의 명령도 어기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인 이지영, 심지어 국왕의 비첩까지 간음하기도··· 권력의 정점 이의민 일가의 악행을 처벌조차 하지 못한 고려 명종
- 아들 이지영·이지광의 횡포와 악명은 아버지인 이의민보다 더하여 별명이 ‘쌍칼’ 원전(原典)의 기록에는 쌍도자(雙刀者)로 기록
〇 이의민, 왕을 꿈꾸다
- 이의민 집권기에 울산의 효심의 난 · 청도의 김사미의 난 등은 1193년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한 민란으로 이들은 모두 신라 부흥을 주장, 토벌군을 보내는데 이의민의 목표는 왕이 되는 야심이 있어 앞으로는 토벌군을 보내면서 뒤로는 반란군을 지원하며 고려 왕실을 무너뜨리려는 입장을 보이는 측면도 나타난다.
- 고려시대 용손십이진설(龍孫十二盡設), 고려 왕조는 용(龍)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12대가 되면 멸망한다는 예언 & 십팔자위왕설(十八字爲王設) · 목자위왕설(木子爲王設), 이씨 성을 가진 새로운 왕이 등장한다는 예언이 횡행하여 다른 집권자들과는 달리 이씨 왕을 꿈꾼 이의민, 결과적으로 나중에 이성계가 왕이 되어 이런 전설들이 맞아 들어간다는 것
- 왕을 죽인 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가 왕이 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 그 당시 민간에서는 의종(毅宗)의 죽음과 무신들의 득세는 고려가 수명이 다 한 것이 아니냐면서 고려를 대신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① 경주지역에서 신라 부흥 운동 ② 평양지역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 ③ 담양지역에서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 놀랍게도 삼국이 통일된 지 500년이 넘은 시점에도 여전히 삼국분립의식이 남아있었다는 것이고 이런 의식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 신라지역 사람들이 이의민을 지지했나?
당연히 신라 지역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옛 신라지역민들의 부흥운동을 이용한 이의민, 이의민이 왕이 되고자한 데는 시대적 배경도 작용, 당시는 왕건·궁예·견훤 등 호족출신의 영웅이 나타났던 후삼국 시대와 유사한 시대였다는 것
〇 <무인시대> 이의민의 최후
- 이의민의 아들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전서구(비둘기)를 강탈해 간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계기로 최충헌 형제는 이의민 부자를 제거할 계획을 도모한다.
- 결국, 이의민은 반역자로 이름을 남긴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는데, 이의민의 최후는 드라마에서처럼 처절하게 죽는 것은 아니고 기록에 의하면 이의민을 효수하고 경주로 사람을 보내서 삼족(三族)을 멸하는 가혹한 처벌을 한다.
〇 무신정권의 한계
- 무신들이 시대의 모순을 개혁할 기회를 무산시키고 역사의 반역자로 남는 것은 아쉽지만 비전(Vision)이 없는 정권은 곧바로 한계를 드러내는 것
- 하지만, 좀 더 긴 흐름으로 무신란을 보면 고려 전기 문벌 귀족에게 독점되었던 국가의 권력이 점점 넓은 계층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무신란>이고, 고려 후기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한 신진사대부의 전신이 무신세력이고 보면 무신세력이 아직 까지는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할 사람들이 등장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셈
- 그런 의미에서 <무신란>은 무신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려 사회를 밑바닥에서 부터 새롭게 만든 사건이라고 긴 흐름 속에서는 평가할 수 있는 것
- 특히 이 시기에 가장 많은 농민·천민 운동이 일어났는데, 공주 명학소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만적의 난 등 수많은 민란이 발생(75건)하게 되는데, 개경의 노비 만적 “공경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 며 외치는데 만적의 롤모델이 된 이의민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제프리 엘튼) 그런데 이런 진리를 왜 죽으면서 깨닫게 되는지··· 정중부 최후의 날 “천하권세가 덧없고 덧없고 참으로 덧없도다.” 어떠한 권력도 역사보다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교훈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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